버스킹하다 과열로 음향 사고
KBS예능 ‘1박2일’ 촬영 취소 등
최악 폭염에 제작 현장 비상
가족 단위 ‘피서 관객’ 몰리며
영화관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
휴대폰에 얼음팩 붙이고 길거리 공연한 사연
펄펄 끓는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홍익대 인근 걷고 싶은 거리. 보컬그룹 동급생의 멤버 허성정의 길거리 공연은 갑자기 중단됐다. 그가 이수의 노래 ‘마이 웨이’의 후렴구를 한창 부르고 있는데 반주가 뚝 끊겨서였다. 뙤약볕에 부채를 흔들며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시민 사이에선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성정은 깜짝 놀라 마이크를 내려놨다. 스피커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MR(가수 목소리 없이 반주만 녹음된 음원)이 담긴 휴대폰을 스피커와 연결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뜨거운 볕에 노출돼 과열로 꺼졌다는 게 허성정의 소속사 HF뮤직컴퍼니의 설명이다. 허성정은 6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무더위로 휴대폰이 꺼져 노래를 중단한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며 웃었다. 허성정은 휴대폰에 얼음팩을 붙인 뒤에야 길거리 공연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영화 촬영 중 탈진… “폭염 촬영 제한을”
4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연예계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에 출연하는 20대 배우 A는 찌는 듯한 더위에 야외에서 촬영하다 최근 탈진했다. 이 배우 관계자는 “건강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무더위에 달리는 장면 촬영을 반복해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야외 촬영이 잦은 영화와 방송가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비상이 걸렸다. KBS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1박2일’은 지난 3~4일 이틀 동안 예정된 촬영을 취소했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 등 스태프의 건강 문제를 위해 촬영을 취소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영화와 방송은 제작 특성상 야외 촬영 대부분 스태프가 반나절 이상 밖에서 장비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을 한다. 잦고 긴 야외 촬영에 더위를 피하거나 몸을 기대 쉴 공간 확보가 만만치 않아 폭염 피해에 노출될 우려도 높다.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이다’ 촬영 보조로 일하던 30대 스태프가 지난 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폭염에 따른 영화ㆍ방송 촬영 현장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스태프의 사망 원인(내인성 뇌출혈)과는 별개로 전국에 폭염 사고가 잇따르자 촬영 현장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내 방송과 상영을 목표로 요즘 제작이 한창인 네 작품은 폭염에도 야외 촬영 취소나 장소 변경 없이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주어진 제작 기간이 빠듯한 데다 낮에 야외에서 꼭 촬영해야 할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영화 촬영장에는 스태프들이 에어컨을 쐴 수 있는 임시 공간이 마련됐지만, 폭염이 극심하면 이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폭염 관련 현장 대응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안병호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폭염에 따른 촬영 진행 및 철수 기준이 현장마다 제각각”이라며 “정부에서 폭염을 재난으로 본다면 이에 따라 폭염 기준 및 촬영 제한 강제 요건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봤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폭염이 피할 수 없는 ‘연례행사’가 된 만큼 제도 마련을 통해 제작 현장도 장기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전년 대비 관객 200만여명 증가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제작 현장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예외인 곳도 있다. 극장은 ‘폭염 깜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더위를 피해 관객이 몰린 덕분이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한 대형 멀티플렉스에는 가족 단위로 영화를 보며 더위를 피하려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서울 봉천동에서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은 김형연(72)씨는 “(할인을 받아) 5,000원으로 2~3시간 동안 더위 피하는 데 극장만 한 곳이 없다”며 “너무 덥고 ‘신과 함께-인과 연(‘신과 함께2’)’도 볼 겸 극장에 왔다”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65세 이상은 5,000원에 일반(2D) 영화를 볼 수 있다. 김씨 부부는 지난 3일에도 같은 극장에서 ‘인랑’을 봤다.
요즘 영화관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지난달 28일부터 8월5일까지 9일 동안 전국 극장엔 1,316만 3,437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몰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19만 3,329명보다 200여만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이 기간에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군함도’ 등 한국 여름 대작이 쏟아져 한창 극장가가 달아 오를 때였다. CGV 관계자는 이번 여름 극장가의 호황을 “‘신과 함께2’와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 입소문을 탄데다 휴가철 폭염으로 관객 몰이에 큰 시너지를 낸 덕”이라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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