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암 8개 대상…타 업종도 간소화 위한 연구용역
최근 삼성전자와의 중재안에 합의하며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3년 가까이 이어오던 천막 농성을 끝낸 시민단체 ‘반올림’.
앞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근로자 황유미씨가 2005년 6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끝내 사망한 사건이 이 단체가 활동을 시작한 계기였다. 당시 비슷한 공정에서 일하던 근로자 여러 명이 줄줄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다. 황씨의 백혈병은 재판 끝에 2014년 8월 산재로 인정됐지만 산재 신청(2008년 4월)을 한 지 무려 6년 4개월 뒤의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씨의 아버지인 반올림 대표 황상기씨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늦었지만, 정부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종사자의 산재 인정 절차를 간소화 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과 법원 판결을 통해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 사례와 같거나 비슷한 공정에서 일한 종사자에게 발생한 직업성 암 8개 상병에 대해 향후 업무 관련성 판단 과정을 간소화 하겠다고 6일 밝혔다. 해당 상병은 역학조사를 생략해 보다 쉽게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직업성 암 8개 상병은 백혈병과 다발성경화증, 재생불량성빈혈, 난소암, 뇌종양, 악성림프종, 유방암, 폐암이다.
현재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종사자에게 직업성 암이 생기면 근무 공정과 종사기간, 해당 공정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노출 정도 등을 규명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역학조사를 의뢰하는 등 절차를 거쳐 업무 관련성을 판단한다. 그러나 이런 조사 과정에 걸리는 기간이 6개월을 훌쩍 넘는 탓에 산재 보상 결정이 지연되는 일이 잦았다.
비슷한 공정에서 유사한 일을 한 근로자가 같은 병에 걸렸다면,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됨에도 역학조사를 고집해 산재 피해자를 두 번 울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고용부가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고용부는 다른 업종에서 발생하는 직업성 암에 대해서도 업무관련성 판단절차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용역 결과를 토대로 산재 인정 절차 간소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아울러 앞으로 산재 입증에 필요한 사업장의 안전보건자료를 공유하고, 신청인과 대리인이 사업장 현장조사에 동행할 수 있게 사전에 참여를 안내하기로 했다. 산재 신청인의 권리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한 신청인이나 대리인이 요청하면 역학조사 보고서를 사전에 제공해 신청인의 알 권리를 보호할 예정이다.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이번 산재인정 처리절차 개선으로 인해 산재노동자의 입증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면서 “앞으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업무상질병이 빠르고 쉽게 치료와 보상을 받고 직장복귀는 더욱 당겨질 수 있도록 산재보험 제도를 세밀하게 관리하고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