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수어시인 장펑
“춤에 감정을 얹어 몸전체로 낭송
수어시의 아름다움 알리는 게 꿈”
문학은 언어 예술이지, 활자 예술이 아니다. 당연히, 수어(手語)로도 문학을 할 수 있다. 중국의 수어 시인 장펑(45∙张鹏)씨를 만났다. 얼마 전 열린 ‘수어 문화학교 수어 시 워크숍’에 국립국어원이 장씨를 초청했다.
수어 시는 말 그대로 수어로 짓고 나누는 시다. 활자 대신 몸짓, 표정으로 표현하는 ‘몸의 문학’이다. 1960년대 미국, 유럽의 농인 예술인들이 시작했다. 초기엔 활자 시를 수어로 번역했고, 이제는 수어로 시를 창작한다. 아시아엔 낯선 개념이다. 장씨는 2년 전 페이스북에서 미국 수어 시인의 시 공연 동영상을 보고 반했다. 미국, 유럽 수어 시인들과 교류하며 수어 시를 배웠다. 장씨는 중국 최초의 수어 시인이 됐다. 수어 문학엔 등단 제도도, 문인들의 카르텔도 없어 시인 데뷔가 어렵지 않았다.
인터뷰하면서 장씨가 수어 시 한 편을 보여 줬다. 양고기를 수어 유희로 풀어 낸 짧고 유쾌한 시였다. 춤 같기도, 무언극 같기도 했다. 장씨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몸을 움직인다고 수어 시가 되는 건 아니다”고 했다. 활자 시인이 원고지 혹은 컴퓨터 문서 프로그램에 시를 습작하듯, 수어 시인은 거울 혹은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시를 연습한다. 활자 시를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시인의 엉덩이로 쓴다면, 수어 시는 체력으로 쓴다. 종이 시집 대신 동영상 시집을 만들어 시 읽는 기쁨을 공유한다.
장씨는 중국 농인 무용단인 천수관음 단원이었다고 한다. “발레만 빼고는 중국 전통 춤부터 힙합까지, 안 춰 본 춤이 없다. 아버지는 음악가, 어머니는 대학 무용과 교수여서 예술을 숨쉬며 자랐다.” 글재주에 해당하는 ‘몸재주’를 장씨가 타고 난 셈이다. 그는 춤보다 수어 시가 훨씬 어렵다고 했다. “수어 시는 춤이라는 행위에 수어라는 언어를 얹어 감정과 생각을 복합적으로 전달한다. 시적 화자와 한 몸이 돼 몸 전체로 시를 낭송한다. 수어 시에도 리듬, 라임이 있다. 표정 변화, 동작의 강약과 반복 등으로 표현한다. 행, 연 구분엔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활자 시를 읽는 것과 몸의 시를 읽는 건 어떻게 다를까. “농인에겐 1차 언어가 수어다. 활자는 번역해서 이해한다. 수어와 활자 언어는 구조 자체가 달라 1대 1 번역이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시의 행이 있다고 치자. 활자 시에선 세 어절이 순서대로 모두 있어야 의미가 전달된다. 수어 시에선 다르다. 시인과 독자의 눈 맞춤, 시인의 몸짓, 표정으로 사랑하는 감정을 절절하게 전달할 수 있다. 수어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각기 번역하는 건 수어다운 문장이 아니다.”
아시아의 농인들에게 수어 시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게 장씨의 꿈이다. “워크숍에서 수어 시를 처음 접한 한국 농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봤다. 농인은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다. 수어 시는 활자 시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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