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나눠주고 골목에 물 뿌려도
집 안 온도 40도 넘는 불가마 여전
겨울 에너지 바우처같은 지원 절실
“선풍기를 틀어도, 골목에 물을 뿌려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는 박모(64)씨는 가장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었다. 38도에 육박한 2일 오후 박씨는 “집 안은 40도가 넘는 불가마라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쪽방촌 골목에서 더운 열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에 의지하는 박씨는 “에어컨이야 싼 중고라도 들일 수 있겠지만, 값비싼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111년만의 기록적 폭염에 무방비 노출된 쪽방촌 주민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지자체 등이 더위를 식히는 스카프와 선풍기를 나눠주고, 골목마다 물을 뿌리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물을 뿌려도 5분만 시원하고, 증발하면 오히려 습해지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돈의동 쪽방촌 주민 A(52)씨가 집 근처 골목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뇌출혈 후유증에 따른 뇌병변이 직접 사인이었지만 “뇌출혈을 겪었던 사람이면 무더위가 (사망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게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이다. A씨가 살던 3.3㎡(1평) 남짓한 쪽방에는 선풍기도 고장 나 더위를 식힐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에어컨이 있는 집주인들이 이를 켜지 않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박씨는 “주로 1층에 사는 쪽방촌 집주인들이 실외기 열기가 위층 세입자(쪽방촌 주민) 쪽으로 올라갈까 싶어 차마 틀지 못하는 집들이 많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냉방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8만~12만원의 연료비를 지원하는 겨울철 ‘에너지 바우처’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름철에는 지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에너지바우처 지급을 여름철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 대해 또 다른 쪽방촌 주민 한모(50)씨는 “폭염이 다 지나고 난 뒤 대책이 무슨 소용이냐”며 혀를 끌끌 찼다.
5일 질병관리본부의 ‘온열질환감시체계 운영결과’에 따르면 이달 4일까지 접수된 온열환자 3,095명(사망 38명) 중 집안에서 발생한 환자는 14%로 대다수가 저소득층으로 추정된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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