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하루키, 여성관을 사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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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하루키, 여성관을 사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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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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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여전히 문장에 목마르다고 했다. “글자만 보고도 굴튀김 생각이 간절해지는 문장을 쓰고 싶어요. 물리적 욕구를 독자들의 마음 속에 심고 싶어요.” 굴튀김은 하루키가 좋아하는 맥주 안주다. 무라카미 하루키 페이스북 캡처

‘하루키 월드’를 소개하는 중급 안내서다. 무라카미 하루키(70)를 일본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43)가 인터뷰한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하루키는 비교적 솔직한 작가다. 산문에서 자기 이야기를 이래저래 많이 했다. 인터뷰 ‘당하는’ 자리에서 한 이야기는 그래도 다르다. 조금 더 무방비의 화자가 됐다고 할까.

하루키는 책에서 단 한 번 겸손함을 벗는다. “소설을 어느 정도 잘 쓸 수 있고, 저보다 잘 쓰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봐서 뭐, 그렇게 많지 않은 셈이잖아요, 이 세상에. 예를 들어 섹스도 나쁘지 않지만, 나보다 섹스를 잘하는 사람이야 아마 세상에 굉장히 많겠지만.” 1979년 데뷔 이후 ‘세계적 베스트 셀러 작가’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 없으니, 토 달 수 없는 말이다.

그런 하루키를 만든 건 뭘까. 우선 재능이다. 하루키는 스스로를 이야기를 받아 내는 피뢰침에 빗댔다. 이야기는 번쩍, 하고 하루키를 찾아온다고 한다. “소설 쓰기는 액시던트(사고)의 연속이다. 많은 일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의미를 생각하려고 발을 멈추면 안 된다. 소설은 자연스러운 발열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그의 주종목인 ‘비유’도 마찬가지. “필요할 때 제 발로 찾아오듯 나온다. 저절로 나오지 않을 때는 비유를 쓰지 않는다. 그다지 고생한 기억은 없다. 집중하다 보면 여러 가지가 몸에 와서 찰싹 달라붙는다. 자석이 철가루를 모으듯이.”

다음은 역시나 성실함. ‘하루키 매직’의 핵심은 문장과 리듬이다. 그건 그냥 와주지 않는다.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의 집요한 고쳐 쓰기로 만들어 낸다. 40년 가까이 문체를 갈고닦은 덕분에 “글로 쓰고 싶은데 못 쓰는 건 없게” 됐다. 하루키의 인생은 통째로 소설이다. “나이트라이프라고는 전혀 없는” 규칙적 생활도, “매년 한 번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4, 5년에 한 번 감기는 앓지만 몸살로 앓아누운 적은 없는” 강철 체력도 그저 소설을 잘 쓰기 위한 “밑 작업”이다. “이야기가 오면 1, 2년쯤 느긋하게 기다린다. 안에서 말을 발효시킨다. 스타팅 포인트를 만나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1, 2년 들여 완성하는데, 뭐가 어찌됐건 매일 하루 열 장은 쓴다. 대충 게으름 부리면서 쓴 건 긴 시간 속에서 반드시 지워진다.”

소설론을 풀어내는 하루키의 말은 글을 닮았다. 산뜻하다. 리얼리즘에 대한 설명. “진짜 리얼리티는 리얼리티를 초월한 것이다. 찔러 넣을 데가 한 단계는 더 있는 리얼리티를 만들어야 한다. 리얼리티의 내장을 밖으로 꺼내 새로운 몸에 심는 것, 살아서 뛰는 신선한 내장을 꺼내는 게 중요하다. 우물쭈물하면 리얼리티가 죽어 버린다.” 글의 리듬은 이렇게 풀이한다. “다 설명해 버리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진다. 리듬이 죽어 버리니까.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는다.”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발행∙360쪽∙1만4,000원

하루키는 일본 문단의 아웃사이더다. ‘이른바 순문학인들’의 질투와 비판을 피해 오랜 기간 일본을 떠나 살았다. 그래서인지, 사람에 관한 한 그는 고슴도치 같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내 열렬한 팬이라고 말해 주더라도 2년쯤 지나면 ‘무라카미는 이제 틀렸어’라고 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독자만큼은 그래도 자신을 믿어 주길 바란다. “‘무라카미 씨의 이번 작품, 정말 실망했습니다. 전혀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다음 책도 살 테니까 열심히 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독자가 최고의 독자다.”

2015년 한 번, 2017년 세 번, 미에코는 하루키를 네 번에 걸쳐 11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미에코의 작가적 자아가 강해 군데군데 질문이 늘어지는 게 책의 작은 흠이다. 하루키가 질문을 듣다 “라디오 방송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그런 미에코는 하루키의 전근대적 여성관을 집요하게 꼬집는다. 하루키 소설 속 여성은 거의 언제나 도구 아니면 희생양인가, 그 놀라운 상상력은 왜 여성 인물 앞에선 멈추는가. 하루키는 처음엔 발뺌한다. “그래요? 어떤식으로? (…) 그렇군요, 음. (…) 그런 구도는 우연이 아닐까요? 나는 일개 소설가일 뿐…” 그리고 끝내 사과한다. “‘주의’의 관점에서 이상하다, 생각이 모자라다는 말에는 ‘미안하다’라고 순순히 사과하는 수밖에 없죠. 사과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고요(웃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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