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붐에 펜 판매 30% 늘어
모나미 2013년 적자 기록했지만
한정판 마케팅 등 힘입어 흑자로
예약제 견학자 반년 만에 1000명
삼성전자 등 타 업종도 펜 출시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 증가로 급격히 쪼그라들던 문구 시장이 바닥을 찍고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디지털 자판이 익숙한 세대에게 아날로그의 상징인 글쓰기가 개성과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자리 잡으며 펜, 노트, 다이어리 등 문구류 판매가 점차 늘어난다.
2일 전자상거래업체 지마켓에 따르면 올 1월부터 7월까지 문구와 사무용품 전체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사인펜과 수성펜, 플러스펜, 만년필 등은 30% 이상 늘었다. 연도에 상관없이 사용하는 만년 다이어리는 같은 기간 18% 증가했다.
업계는 캘리그라피의 인기가 문구류 매출 증가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캘리그라피는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손글씨 기술로 영화 제목, 광고, 책 제목, 상품 포장, 각종 홍보용 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다 최근 취미 생활로 확대되고 있다. 지마켓,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의 이진영 리빙레저 실장은 “디지털 기록과 달리 손으로 직접 작성하고 꾸미는 아날로그만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늘며 관련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손글씨가 고급 취미로 인기를 끌면서 문구도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매출이 늘고 있다. 명품 브랜드 위주로 팔리던 만년필의 대중화가 특히 눈에 띈다. 국내 문구업체 모나미가 2016년 처음 출시한 3,000원짜리 만년필 ‘올리카’는 약 90만자루가 팔렸고, 올 초 출시한 2만5,000원짜리 프리미엄 만년필 ‘153 네오 만년필’은 6개월 만에 2만자루 이상이 팔려나갔다. 고가의 만년필 브랜드인 파카와 몽블랑도 최근 들어 젊은 층을 겨냥해 기존 제품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등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모나미는 문구 시장 축소로 2013년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이 점점 악화했으나 이듬해 출시한 ‘153볼펜’ 발매 50주년 기념 한정판 등 프리미엄 제품이 연달아 히트를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DIY(Do It Yourselfㆍ직접 만들기) 키트와 컬러 마케팅도 문구 시장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모나미는 ‘153 볼펜’의 고전적인 디자인에서 탈피해 20개의 컬러로 볼펜의 부품을 조립할 수 있는 DIY 키트를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최근 표지, 내지, 제본용 실, 바늘로 직접 노트를 만들 수 있는 DIY 노트 키트인 ‘워크룸 키트’를 출시했다. 모나미는 또 지난해 12월 경기 용인 본사에 다양한 색상의 만년필 잉크를 직접 조합해 자신만의 컬러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한 예약제 유료 체험 공간 ‘잉크랩’을 열었는데, 6개월 만에 1,000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모나미 관계자는 “어린이부터 학생, 중년까지 다양한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며 “펜을 수집하거나 문구 사용을 즐기는 이들에겐 놀이터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문구류의 인기에 아날로그 필기구의 감성을 강화한 디지털 기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글로벌 필기구 제조사 스테들러와 협업해 이 업체의 연필 제품과 닮은 스타일러스 펜 ‘S펜’을 선보였고, 고급 노트 브랜드 몰스킨도 최근 아날로그 필기의 섬세함을 강화한 스마트펜 ‘펜 플러스 일립스’를 출시했다. ‘펜 플러스 일립스’는 기존의 스마트펜보다 더욱 섬세한 터치가 가능해 아날로그의 세밀함과 정교함을 디지털 기기에서도 살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몰스킨의 한국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항소의 임소영 팀장은 “최근 직장인들 중심으로 이 같은 프리미엄 문구와 아날로그 감성을 살린 디지털 기기 판매가 늘고 있다”며 “사무용품이나 문구 하나에도 개성을 담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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