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딸의 죽음... 항공사-갑질-군-방산비리 어지럽게 얽힌 어두운 단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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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딸의 죽음... 항공사-갑질-군-방산비리 어지럽게 얽힌 어두운 단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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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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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작가. 민음사 제공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산비리 사건에 연루돼 불명예 제대한 전직 공군 대령 정근에게 딸의 죽음은 슬픔 이상의 무언가를 안겨 주었다. 그동안 고민해 본 적 없는 일들에 대한 고민. 전역 이후 정근은 아내와 헤어지고, 유나와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졌다. 살아 있는 유나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본적도 없을 정도로 딸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만난 딸의 친구들은 유나의 ‘억울한 죽음’의 전말을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젊은 작가상 대상 수상자인 박민정 작가의 첫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는 추리소설 못지않은 박진감을 자아낸다. 촘촘한 플롯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유나 죽음 뒤에 숨겨진 퍼즐이 하나씩 맞춰진다. 유나가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유나의 편지,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해 장면이 전환되는 영상을 보는 듯하다. 유나의 아버지인 정근, 남자친구인 주한, 과거 정근의 운전병이었던 영훈 등의 시점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스무 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200여쪽의 이야기 안에 갑질, 성희롱, 인권침해, 방산비리, 내부고발, 지역감정, 노사갈등, 빈부격차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수없이 던져져 있다. 언제 어디선가 뉴스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실재하는 현시대의 모습이다. 이런 풍경에 기여하는 인물 중 그 누구도 애달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과거 대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운전병을 자신의 개인 운전기사처럼 부렸고, 방산비리를 밝혀내려는 동료를 가까이에서 압박해 죽음으로 내몬 정근마저도 그렇다. 딸의 죽음과 회사의 관련성을 알아내려는 그에게는 ‘이혼하고 10년 동안 제대로 애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산재 처리라도 받아 내려고 하는 양심 없는 인간’이라는 얘기가 따라붙는다. 항공사 부기장인 영훈은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에게 좌석 특혜를 주던 항공사 관행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했다. 조종사 노동조합 간부라는 이유로 사측에는 요주의 인물이다. 사고를 당한 영훈의 아내 혜진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입원해 있다. 그와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유나는 유부남과 불륜 관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미스 플라이트’

박민정 지음

민음사 발행ㆍ244쪽ㆍ1만3,000원

그 속에서도 유나는 부당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함께 싸우고 싶어 하던 여성이었다. 정근에게는 “아빠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딸이었다. 영훈의 기억 속에는 “뒷자리에 앉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속 깊은 아이였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고,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사람이었다. 주한과의 추억 속에는 환경문제를 고민하며 국토순례를 하던 대학생으로, ‘피곤한 와중에도 친구들을 챙기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얽히고설킨 갈등과 비밀이 드러난다. 하지만 작가는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고, 독자에게 해석을 맡긴다. “옛날의 자신으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근의 다짐에서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마주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엿보고 싶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 플라이트’가 유발하는 궁금증은 유나가 왜 죽음을 택했는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책 속의 모든 등장인물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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