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32곳 현장점검 결과
입출고ㆍ대량주문 처리 허술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사태를 촉발시킨 시스템상 허점이 상당수 증권사에서도 드러났다. 실제로 발행하지 않은 주식을 계좌에 입고해 주식시장에서 내다파는 일이 다른 증권사에서도 가능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재발 방지책을 내놨지만, 이참에 증권업계의 후진적 주식거래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감독원은 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증권사 주식매매 내부통제 시스템 현장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지난 4월 삼성증권 사태를 계기로 5월부터 한 달 간 32개 증권사와 코스콤(금융업계 전산전문회사)을 상대로 부적절한 주식매매 행태를 걸려낼 내부통제 체계를 갖췄는지를 점검했다.
점검 결과 증권사 주식매매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허점이 많아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강전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장은 “32개 증권사 중 내부통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상당수 증권사에서 유령주식 발행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고객 주식을 실물로 입고할 때와 주식을 대체 입출고(다른 증권사 계좌로 주식 이체)할 때 허수의 주식이 발행될 소지가 있었다.
실물 입고는 투자자가 증권사 객장을 찾아 종이 서류로 발급받은 주식증권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계좌에 주식을 입고하는 걸 뜻한다. 실물 입고 주식은 증권사 직원이 전산을 통해 주식 정보를 입력하고 예탁결제원이 해당 증권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 뒤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주식 정보 입력 과정에서 총 발행주식 수를 넘는 수량을 입고했을 때 이를 걸러낼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삼성증권 역시 자사주를 우리사주에게 배당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발행주식수(8,930만주)를 훌쩍 넘는 28억주를 입고 수량으로 입력하며 사고를 빚었다. 또한 일부 증권사 시스템은 이렇게 수작업으로 입고한 주식이 예탁원 검증 및 책임자 승인 절차 없이도 시장에서 바로 유통될 수 있는 구조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사고 가능성이 있었을 뿐 실제 유령주식이 발행됐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김진국 금감원 부국장은 “설령 유령주식이 발행됐더라도 사후 예탁결제원이 주식 총발행수를 대조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적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대체 입출고 시스템에도 똑같은 허점이 발견됐다. 상당수 증권사는 전산으로 자동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춰 사고 확률이 낮았지만, 일부 증권사는 해당 시스템을 갖추는 데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직원이 수작업으로 주식을 이체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증권사들이 대량 주문을 처리하는 방식도 허술했다. 증권사 모범규준상 투자자가 실수로 주식을 대량 사들이는 ‘팻 핑거(fat fingerㆍ주문 실수)’를 할 때 증권사는 거래시스템에 경고메시지를 띄우거나 자동으로 주문보류 조치를 내려 해당 주문을 다시 확인하도록 해야 하지만, 일부 증권사들은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유령주식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발행주식수를 초과하는 주식이 입고되지 않도록 전산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편하고 직원 손을 거치는 작업은 전산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또 주문 금액이 일정 규모를 넘기면 무조건 주문 보류를 하도록 하고, 현재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해외주식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김도인 금감원 부원장보는 “앞으로 증권사의 내부통제 미비 사고는 강력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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