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ㆍ현직 지도자들의 비밀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관영매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최고지도부의 동정 보도가 일제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선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관련해 시 주석의 외교노선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대표적 관영매체인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CCTV 등은 2일 시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동정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이틀 전만 해도 관영매체들은 시 주석이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하반기 경제 운용 방안을 논의하고 리 총리가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을 접견한 소식 등을 대서특필했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베이다이허 회의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전ㆍ현직 수뇌부들이 여름 휴가를 겸해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의 휴양지 베이다이허에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다. 회의 개최 직전엔 정치국 회의와 성(省)급 간부회의가 열리고 상무위원들이 공식석상에서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선 베이다이허 인근의 검문ㆍ검색이 강화됐다는 소식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초에 열린 베이다이허 회의는 제19차 중국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의 1인 절대권력을 공고히 하는 무대였다. 이에 비해 올해에는 미국의 파상 공세에 직면한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대응 방안과 함께 시 주석의 외교ㆍ경제정책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시 주석은 2012년 말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주창하며 전면적인 굴기(崛起ㆍ우뚝 섬) 전략을 추진해왔다.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우자는 이전 지도자들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과는 다른 외교노선을 추진한 것이다.
시 주석의 굴기 전략은 중국을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의 한 축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근래 들어 미국의 경계심과 반감을 불러 무역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1인 절대권력 체제에 비판적인 원로들을 중심으로 그의 정책 노선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불량백신 파문,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대에 시 주석의 종신집권 추진을 비난하는 대자보 게재 등과 관련해 시 주석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의 절대권력 기반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미 중앙의 당ㆍ정ㆍ군은 물론 지방권력까지 확고히 틀어쥐었고 반부패 드라이브를 통해 정적들도 대부분 제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 주석의 노선과 지도력에 대한 비판이 일부 나올 수 있지만 이를 시 주석의 권력기반 약화로 보는 건 무리”라며 “오히려 시 주석이 비판적인 견해를 수용하면서 절대권력 기반을 더욱 튼튼히 가다듬는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