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종량세 전환은 조세 형평성과 소비자 후생 모두를 봐야 한다.”
내년도 세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주세(酒稅) 체계 개편 논쟁이 붙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간 국내 맥주업계는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가세’ 방식 때문에 국산맥주(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에 과세)가 수입맥주(수입신고가+관세에 과세)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며 국산ㆍ수입산 구분 없이 리터(ℓ)당 과세하는 ‘종량세’로 주세 제도를 바꿔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지난달 30일 발표된 세법 개정안에는 주세 개편안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1만원이면 수입맥주 4캔을 마실 수 있는 국민들의 ‘음주 복지’를 해칠까 싶어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는 해석이 정설처럼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재부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복수의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에 따르면 맥주 과세 개편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된 것은 ‘프리미엄 소주’랍니다. 초록색 병에 담겨 개당 1,160~1,660원에 팔리는 일반 소주와 달리 프리미엄 소주는 한 병 가격이 보통 1만원을 넘습니다. 일반 소주는 발효된 술을 여러 차례 증류(술을 끓여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과정)한 뒤 물과 첨가물을 타 묽게 만든 ‘희석식’이지만, 프리미엄 소주는 증류 횟수를 줄여 원료의 풍미를 살린 ‘증류식’이라 제조 비용이 더 듭니다. 여기에 술을 도자기에 담는 등 고급화 전략에 따른 포장 비용까지 더해집니다. 출고가가 오를수록 세금 부담이 커지는 현행 ‘종가세’ 체계는 국산 맥주뿐 아니라 프리미엄 소주에도 불리한 구조인 셈입니다.
이 때문에, 맥주 업계의 노력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프리미엄 소주 업계 역시 소주 과세 방식을 종량세로 전환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습니다. 특히 프리미엄 소주 ‘화요’를 생산하는 광주요 그룹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반 동안 14차례에 걸쳐 당국에 주세법을 개정해 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고 합니다. 지난 5월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고급주의 대중화를 위해 주세법을 종량세로 바꿔달라’는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에겐 품질 좋은 술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즐길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죠.
문제는 지금의 세법은 주류별로 주세 부과 방식과 세율을 정해놓은 터라, 프리미엄 소주의 과세 방식을 바꾸려면 세법상 같은 ‘증류주’에 속하는 일반 소주와 위스키도 함께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행 종가세 체계에선 출고가가 낮은 일반 소주는 낮은 세금을, 출고가가 높은 프리미엄 소주와 위스키는 높은 세금을 내는데, 이를 종량제로 바꾸면 일반 소주와 프리미엄 소주, 위스키의 가격 격차가 좁아지게 됩니다. 성명재 홍익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증류주를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일반 소주의 세금은 10.9% 늘고 위스키는 72.4% 감소합니다. 종량제 시행 이후 정부가 일반 소주의 가격 인상을 막으려 ℓ당 세율을 낮출라치면 프리미엄 소주와 위스키 세금도 그만큼 내려야 해 ‘과세 하향 평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성 교수는 지적합니다. 국제 판례에 따라 같은 증류주 간 세율 차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일각에선 프리미엄 소주업계의 세제 개편 요구가 업계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 사건ㆍ사고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특정 주류를 콕 집어 ‘감세’ 혜택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주세 논쟁은 국회의 세법 개정안 심의가 이뤄지는 가을까지 계속될 전망입니다. 세제실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듯 합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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