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기주(29)는 연예계에서 야무지기로 소문났습니다. 배우가 되기 전 경력이 화려하기 때문이죠. 진기주는 2012년 대기업 S사의 IT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약 2년 만에 퇴사하고 지역 방송사 기자가 됐습니다. 2014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해 3위에 오른 후 그는 배우의 길을 밟게 됐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일을 당차게 해낼 것 같은 인상입니다.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진기주의 얘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배우가 되기까지 “좌절과 자괴감, 자기반성의 시간들을 많이 거쳤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이력에 주목하지만, 6년간 수없이 포기하고 실패하는 위기를 겪었다는 겁니다. 진기주는 “대부분 나를 진취적으로 보지만, 사실은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직업을 자주 바꿨던 걸까요? 진기주는 “새로운 일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나이일 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S사 퇴사 전 6개월간 “진짜 다른 일이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지금의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은 건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시간이 늦으면 고민조차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진기주는 사표를 냈습니다. 이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불합격 통보로 수 차례 좌절을 느꼈다고 합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부딪혔습니다. 방송기자를 그만 뒀을 때는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 한동안 집까지 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퇴사 전 아버지의 반응을 예상하고 친구들에게 미리 “재워달라” 부탁했다고 하니, 강단 있는 성격을 알 만 합니다.
배우는 어렸을 때부터 내심 키워오던 꿈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까봐”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기획사에 모집 공고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디션을 일반 기업 면접으로, 개인프로필을 회사지원서로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합니다. 2015년 데뷔한 진기주는 3년 만에 MBC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로 주연급 연기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과제가 많다고 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완급 조절하는 노련함이 없다”고 자평했습니다.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 촬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선 최준배 PD가 도와주셨지만, 앞으로는 (완급 조절을) 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S사를 다닐 때처럼 안정감을 느낄 순 없지만, “여러 사람과 모여 한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 그는 즐겁다고 합니다. 목표는 의외로 소박합니다. “직업을 또 바꿀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배우를 제 마지막 직업으로 삼고, 꾸준히 연기하는 게 목표죠. 역할의 경중을 따지기엔 너무 초짜라서요. 무슨 작품이든 바로 차기작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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