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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갈 때 막 퍼준 ‘위기의 미국 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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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갈 때 막 퍼준 ‘위기의 미국 연금’

입력
2018.07.31 17:54
수정
2018.07.31 19: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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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소도시 센트럴폴스에서 열린 퇴직 연금 관련 설명회 모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소도시 센트럴폴스에서 열린 퇴직 연금 관련 설명회 모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북동부 로드아일랜드 주(州)의 소도시 센트럴폴스에 사는 퇴직 소방관 조지 아이시스는 7년 전부터 생활 습관이 확 바뀌었다. 식료품은 거의 할인 품목만 사고, 가스와 전기도 최소한도로 쓴다. 그는 “이전엔 잘 사용하지 않았던 (할인 또는 무료) 쿠폰에 대해 이제는 싹 꿰고 있다”고 했다. 2011년 이 도시가 연간 예산의 4배 가까이 불어난 공무원 퇴직연금, 건강보험 지급액을 감당 못해 파산을 신청하면서 생긴 변화다. ‘퇴직 공무원 연금 55% 삭감’ 결정과 함께, 월 2,600달러(약 300만원)였던 아이시스의 연금 수령액도 1,200달러로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예금 잔고는 6달러 1센트뿐이다.

미국의 주정부, 지방정부가 운용하는 공적 연금 기금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면서 미래 연금부채도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재정난 탓에 퇴직자들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부족분, 이른바 ‘연금 구멍(pension hole)’이 최대 5조달러(약 5,6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올 정도다.

WSJ에 따르면 민간 연구단체인 ‘공공 계획 데이터베이스’가 2017 회계 연도 수치를 토대로 산출한 각 주와 지방의 연금 재정 위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예컨대 켄터키주의 주요 연금 계획은 퇴직 근로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약속을 16% 정도만 이행할 수 있는 상태다. 시카고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금 기금도 필요 금액의 30%를 밑돌았다. ‘퓨 자선 신탁’도 한 연구에서 뉴저지주 근로자를 위한 연금 시스템이 재원 부족으로 12년 후엔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면, “센트럴폴스의 전철을 밟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수(稅收) 감소에도 공무원 복지를 늘린 대가를 ‘파산 신청’으로 혹독히 치르고 있는 이 도시의 퇴직 공무원들은 아직까지 연금의 원상회복은커녕, 일부 복구마저 꿈도 못 꾸고 있다. 큰 부상을 입고 은퇴한 전직 소방관 폴 그레넌(73)은 “(연금 삭감으로) 매달 300달러의 의료비도 충당하기 힘든 형편”이라며 “우려되는 건 이런 일을 겪으면서 ‘배신감’도 커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와 켄터키주는 각종 반발에도 불구, 연금 삭감을 밀어 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연금 위기는 결국 정치권의 ‘퍼주기’에서 비롯됐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1857년 부상 경찰관을 위해 처음 도입된 미국의 공공 연금 제도는 20세기 들어 대폭 확대됐는데, 이 과정에서 공무원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정치인권이 무작정 수용해 줬다는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주식 시장 호황에 힘입어 연금기금이 단기간 흑자를 기록했지만, 뒤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베이비 붐 세대의 대략 퇴직 등으로 순식간에 연금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미국의 미래 연금부채가 5조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세계 3위 경제권인 일본의 국내총생산(GDPㆍ5조1,670억달러)과 맞먹는 규모다. WSJ는 “정부가 세금을 인상하거나, 기금을 전환하거나, 퇴직 근로자가 자신의 몫 일부를 포기하도록 설득하지 않는 한, ‘은퇴 이후 풍족한 삶’을 약속해 주었던 연금이 오히려 파산 상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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