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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기상청 예보관 “제 속은 365일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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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기상청 예보관 “제 속은 365일 타고 있습니다”

입력
2018.07.31 16:56
수정
2018.07.3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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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愛ㆍ16] 28년 경력의 서울 기상청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 

 예보 빗나가면 각종 비난 쏟아져…대인기피증에 수신전화 트라우마 

 포장된 희망고문 예보는 금물…변동성 강한 예보는 자주 확인해야 

지난 26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이 모니터를 보면서 우리나라 폭염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이 모니터를 보면서 우리나라 폭염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 속은 365일 타고 있습니다.”

1년 내내 가시방석이다. 대인기피증과 항의 전화 벨소리에 대한 정신적 후유증(트라우마)은 30년 가까이 날씨와 사투를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몸 속에 축적됐다.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은 예삿일이다. 오히려 무관심이 반가울 정도다.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56) 예보국 총괄예보관은 “28년 기상청 생활 동안 한 번도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이번 여름은 더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상청장상(1998년)과 국무총리표창(2010년) 등을 수상한 그는 기상청에선 베테랑으로 통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역대급 폭염 앞에선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17년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웠던 1994년 여름을 넘어선 역대 최고 기온 기록 갱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한 동안 숨 막히게 했던 미세먼지 예보가 이젠 질식 수준의 폭염 전망으로 바뀌었네요.” 김 예보관은 40도 가까운 외부 온도를 의식이라도 하듯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냈다. 김 예보관의 주된 업무는 전국 날씨 예보에서부터 호우와 폭염 등의 특보를 분석, 최종 결정하는 일이다.

지난 26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이 센터내 종합관제시스템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포착된 구름의 이동 경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이 센터내 종합관제시스템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포착된 구름의 이동 경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보 빗나가면 비난 쏟아져…대인기피증에 전화 트라우마도 

산전수전 다 겪은 김 예보관이지만 올 여름은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라고 했다. 폭염으로 희생된 인명이나 가축 피해 소식 등은 예보관들에겐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요즘 아침에 눈 뜨기가 무서워요. 폭염이 언제쯤이면 끝날 지, 전하고 싶은 마음은 저희도 굴뚝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자연 현상 예측은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게 김 예보관의 고충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알 순 없어요. 그런데 일기예보가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비난은 밀려옵니다.” 일기예보는 확률에 바탕을 둔 전망치 인데,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일반 시민들은 예보가 조금만 빗나가도 비판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그는 웃지 못할 일화도 털어놨다. “기상상황이 좋지 않은 날이었어요. 전망치로 내놓은 예상 강우량과 풍랑주의보 때문에 기상청에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배의 소유주인 선주들은 ‘강우량과 풍랑주의보를 너무 과하게 예보하니까 선원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는 불만을 터트린 반면, 선원들은 오히려 ‘강우량과 풍랑주의보를 너무 약하게 예보한 거 아니냐, 바다로 일을 나갔다가 비가 많이 와서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거냐’는 불평을 쏟아냈어요.”

황당한 항의는 그뿐 아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예보를 내보냈는데, 예상치 보다 밑돌 경우엔 ‘괜히 쓸데 없는 대비를 하게 만들었다’며 불평 전화가 걸려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상청 안에서도 예보국은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다. “예보국에 지원하는 후배들이 없어요. 이런 곳에 와서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예보국내 선후배간 격차가 많이 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지난 26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은 “일기예보는 변동성이 큰 만큼, 자연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6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만난 김영화 예보국 총괄예보관은 “일기예보는 변동성이 큰 만큼, 자연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택시기사들은 든든한 우군…일기예보는 수시로 확인해야 

이런 악순환 때문에 예보관들은 엄청난 정신적, 심리적 부담을 갖게 된다. “사람들을 대하기가 무섭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두려운 겁니다. 항상 누군가에게 비난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스마트폰 벨소리나 진동이 울릴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는 제 자신을 보면 당황스러워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싶거든요.”

이런 트라우마는 기상청 예보관들에게 직업병처럼 각인됐다. “그 동안 그만두고 싶었던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아내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지금까지 힘들어서 써봤던 사표들도 수없이 많아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틈날 때마다 등산을 한다는 그의 취미도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의 연장선이다.

그래도 그는 기상청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예보에 목말라 하는 일반 시민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든든한 우군들도 적지 않다. 실시간 라디오 방송 애청자인 택시 운전기사들이 기상청 도우미들이다. “택시 운전기사들은 변하는 일기예보를 항상 라디오로 경청하거든요. 새벽에 들었던 일기예보가 오후엔 바뀔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택시기사들이 승객들에게 바뀐 날씨예보를 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든든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기예보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그는 생기있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음 예보 준비를 서둘렀다. “뭔가 하나 올라오고 있긴 한데, 이게 확실하지 않아요. 고기압 가장자리에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만, 변동성이 크고 태풍하고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거든요. 분석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폭염에 힘들다고 해도 과장되게 포장해서 희망고문식 예보를 내보낼 순 없잖아요.” 그는 예보 분석을 위해 팀원들이 모인 회의실로 향했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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