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기 드물게 강렬하다. ‘소름유발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빡빡머리에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날렵한 몸놀림까지. 어느 것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게 없다. tvN 토일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군 츠다 하사를 연기한 신예 이정현(28)은 조선인을 괴롭히는 악랄한 모습을 소름 끼치게 연기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츠다가 지난 28일 7회 방송에서 고종에게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써 이정현은 시청자들과 작별하게 됐다.
이 ‘괴물’ 신인은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31일 한국일보와 만난 이정현은 “오디션 없이 ‘미스터 션샤인’에 캐스팅 됐다”고 말했다. 주연급도 아니면서 지난해 10월 일찌감치 ‘미스터 션샤인’에 합류한 이정현의 사연은 남다르다. 오디션은 신예들에게는 의무사항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정현의 경우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가 먼저 연락을 취했다. 영화 ‘박열’(2017) 때문이었다. 이정현은 ‘박열’에서 간토 대지진 이후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하던 자경단 일원으로 출연했다. 스크린에 잠깐 스치는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서슬 퍼런 일본인의 광기 어린 눈빛은 김 작가와 이 PD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정현은 대본 사전 읽기 모임에 참석하지도 않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특별 대우’를 받았다. 김 작가와 이 PD는 이정현을 믿고 츠다 역을 맡긴 것이다. 그러니 이정현에겐 “첫 촬영이 (제작진과의)첫 만남”이었다.
일제의 악행을 그린 영화 ‘군함도’(2017)에도 출연한 이정현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2016)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그가 일본인이 아니냐는 말들이 오간다. ‘미스터 션샤인’에서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이정현은 용인대 유도학과를 졸업했다. 운동선수로서는 늦은 편인 중학생 때 유도를 시작해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갔다. 2011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가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 운동과 일본어에 집중했지만 향수병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들었다. “의지할 데라고는 TV밖에 없었다.” 일본 TV에서 방영하던 KBS 드라마 ‘브레인’이 “유일한 치유책이 됐다.” 배우라는 새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귀국 후 연기학원을 다녔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2’(2015)에 ‘유도부 주장’이라는 단역을 맡아 배우가 됐다. “영화 속 저를 알아보시기 힘들 수도 있어요. 머리카락이 길어서요(웃음).”
민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헤어스타일 덕을 꽤 봤다. 그는 이제 일본인 악역 캐스팅 1순위에 오를 판. 하지만 그는 “눈 좀 풀고 착한 역도 하고 싶다”라며 웃었다. 인터뷰하기 직전 허진호 감독의 다음 영화 ‘천문’ 오디션을 봤다. “‘미스터 션샤인’을 하면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고 자신감이 많이 붙었습니다. 이젠 코믹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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