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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소문과 진실, 능소화

입력
2018.07.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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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는 그 끝을 알 수 없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지칠 줄 모르고 살아나는 것은 매미소리뿐인 그런 도시의 여름날입니다. 그래도 둘러보니, 그 속에서 피어나 싱그럽고 아름다운 존재가 있는데, 바로 능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엊그제 짧지만 평화로운 휴가를 보내며 새벽을 맞이했던 송광사 지장전 옆 담장 위에도, 지난해 그냥 보낼 수 없어 떠났던 막바지 여름날 청산도 상서마을 옛 돌담 위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피어있던 꽃이 능소화여서 이렇게 마음 속에 남아 자꾸자꾸 떠오르는가 봅니다.

예전엔 드물었던 능소화가 이젠 곳곳에서 보입니다. 특히, 도로변 회색의 벽과 자동차만이 가득한 그 삭막한 도로에 초록색 수벽(樹壁)을 올리고 주먹만한 주홍빛 꽃송이들을 주렁주렁 피워내는 모습이 참 장하다 싶고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능소화가 우리 곁으로 이렇게 가까이 오기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사연들이 있습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혹 양반 집이 아닌 곳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혀가 곤장을 맞았기에 별명이 ‘양반꽃’이었답니다. 지금으로서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그 당시 그 소문은 능소화의 공유와 확산을 막았을 듯 합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나무를 흔히 만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추위를 이기는 힘이 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장소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대부분 따로 월동준비를 해 주어야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따뜻해지는 한반도가 적어도 능소화 구경을 수월하게 해주는 데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능소화의 수난은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졌는데, 능소화의 꽃가루가 갈고리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일본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조선시대 이덕무(1741∼1793)란 이의 책에 ‘어떤 사람이 능소화를 쳐다보다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눈에 들어가서 실명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이야기가 합세해서 소문이 확산되었고, 어린이집이나 공원 등에서는 잘 키우던 나무들을 뽑아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실험연구를 한 결과 능소화의 꽃가루는 표면이 가시 또는 갈고리 형태가 아닌 매끈한 그물망 모양을 하고 있어 바람에 날리기 어려운 조건이었지요.

생각해보면 하늘을 향해 벽을 타고 오르며 피어나는 이 멋진 꽃송이들을 독점하고 싶은 양반들의 속내가 없었다면 나무가 사람을 능멸할 리가 없지요. 한동안 지속된 꽃가루 유해성 논란은 사전에 연구자들이 성과에 대한 욕심보다 필요에 의한 연구를 우선했더라면 좀 더 일찍 해결됐을 문제입니다. 본질과 진실 대신, 오해와 소문에 묶여 이 아름다운 여름꽃 능소화가 우리 곁에 가까이 오기까지 기간이 걸린 셈이지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한 세상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숱한 소문이나 선입견 속에서,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세상일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그르치며, 하지 않아도 될 근심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작고 고운 능소화 꽃송이들이 수많은 나팔이 되어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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