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결국 연금 관치주의” 불만
시민사회 “주주권 행사 제한적
재산보호 제대로 하겠나” 우려
스튜어드십 코드 연착륙 위해선
수탁자책임위 독립성 확보가 관건
“정부가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길을 열기로 합의했음에도 ‘원칙적 배제’라며 기업 안심시키기만 열중하면, 국민연금이 국민 재산보호를 위해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겠나.” (시민사회 추천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정부가 이미 기업을 때릴 준비를 마쳤는데, 여러 가지 펀치(punch) 방법 중 굳이 경영참여처럼 기업이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때리겠다고 하면 선언적 의미라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사용자 추천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30일 국민의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가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강화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하면서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를 제한적으로 시행하기로 하자 후폭풍이 거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업 견제를 위한 실질적 수단은 확보했지만 정부의 실행 의지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고, 경영계는 “투자기업 수익률 제고라는 본래 목적보다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추려고 유도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의결된 도입방안은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활동인 ▦이사 선임과 해임 ▦감사 후보 추천 ▦정관 변경 제안 ▦주총 소집 요구 등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같은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되, 그 전이라도 기금운용위가 의결한 안건은 예외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의 ‘갑질 사건’ 등 기업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주주가치 훼손이 극심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이 발생하면 당장이라도 기금운용위의 의결을 거쳐 이사 해임 등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애초 국민연금을 관리 감독하는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스튜어드십 코드 원안에는 없던 내용인데, 보다 실효성 있는 주주권 행사 방안이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와 근로자 위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특히 경영참여 주주활동을 하는 경우 기업 지분 5% 이상 보유 시 1%포인트 이상 변동이 생기면 5일 이내 공시를 해야 하고(5%룰), 10% 이상 보유하면 6개월 이내에 매도(매수)해 얻은 이익(단기매매차익)은 기업에 반환해야 하기(10%룰) 때문에 국민연금의 손해를 우려한 정부도 주저했던 부분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의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경영 참여는 원칙적으로 배제하지만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금운용위의 1차 목표는 국민연금의 수익성 강화인 만큼,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킬만한 주주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 측 위원들은 ”향후 정부가 자본시장법 개정 등을 통해 경영참여를 본격화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하다”고 경계했고, 시민사회 측 위원들은 “원칙적 배제를 강조해 경영참여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며 반발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사전공시는 신설된 수탁자책임위원회(이하 수탁자책임위)가 공개하기로 의결한 안건만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경영계 측 위원들이 “국민연금의 막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연금의 결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 시장이 왜곡될 것”이라고 우려한 것을 수용한 것이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부작용 없이 안착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독립성 확보일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현재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를 전문가 중심의 수탁자책임위로 확대ㆍ개편하기로 했지만, 이는 기금운용위 산하의 비상설기구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정부 인사를 배제하고 민간위원으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사용자와 근로자 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위촉하는 형태는 기존 의결권전문위와 다르지 않다. 사용자 측 한 위원은 “결국 정부가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있으면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단을 확보한 것 아니겠느냐”며 “결국 ‘연금 관치주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인사를 배제하고 각계 대표의 추천 전문가로 구성되기 때문에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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