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직원 사칭해 전화 걸어
대출한도 조회 위한 앱 설치 유도
은행에 전화해도 보이스피싱 연결
“제 손으로 직접 사기단에 전화를 걸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죠.”
서울 관악구에 사는 정모(48)씨는 최근 A캐피탈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5% 상당 고금리로 받고 있는 대출을 6%대 정부지원자금 대출로 대환대출(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뒤 이전의 대출금을 갚는 제도)을 해주겠다”는 제안. 정씨가 호기심을 보이자 상대는 “대출한도 조회를 하려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야 한다”며 링크를 보내왔다. 한도조회만으로 별일이 생기겠냐는 마음에 정씨는 의심 없이 앱을 설치했다.
대출 조회를 한 뒤 정씨는 곧 기존에 대출을 받은 저축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캐피탈 직원 말대로 하면 부담스럽기만 했던 이자 비용을 꽤나 많이 아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기존 대출금 중에서 일부를 상환하면 바로 대출 해지를 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그리고 정씨는 바로 600만원을 상담원이 알려준 저축은행 계좌로 입금했다.
뭔가 ‘당했다’는 기분이 든 건 그 다음부터다. 무엇보다 휴대폰이 이상했다. 다른 일로 거래를 하고 있던 은행과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까 통화했던 저축은행 상담원과 똑같이 들리는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응답을 해왔다. 몇 번을 다시 해 봤지만 마찬가지. 정씨는 “사기를 당했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됐다”며 다음날 관악경찰서를 찾아 신고했다.
경찰은 정씨가 별생각 없이 설치한 한도 조회용 앱을 지목했다. 그 어떤 금융기관과 정부기관의 ‘1588’로 시작하는 자동응답시스템(ARS)에 전화를 하더라도 문제의 앱이 보이스피싱 콜센터로 자동 연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정씨뿐 아니라 기존 금융기관의 이름과 로고 등을 본떠 만들어진 앱 때문에 피해자들이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같은 수법으로 4,200만원 사기를 당했다는 황모(32)씨 신고가 접수된 강동경찰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몇 달 사이 앱까지 정교하게 설계한 신종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높은 대출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저신용자들을 노린 악질 수법”이라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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