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 이흑산(35ㆍ압둘레이 아싼)이 챔피언 벨트 획득 기회를 놓쳤다.
이흑산은 29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아시아 웰터급(66.68㎏) 타이틀 매치에서 정마루(31ㆍ와룡체)와 12라운드 승부 끝에 1-1(116-115 112-116 114-114) 무승부를 기록했다. 챔피언 정마루는 타이틀 1차 방어에 성공했고, 도전자 이흑산은 8전 6승(3KO) 2무로 무패 행진을 이어간 것에 만족해야 했다.
키 180㎝에 양팔 길이 187㎝의 탁월한 신체조건과 사우스포의 장점이 있는 이흑산은 4라운드에서 폭발했다. 경쾌한 스텝으로 정마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묵직한 왼손 훅을 연이어 정마루의 안면에 적중시켰다. 5라운드에서 정마루가 접근해오자 이를 옆으로 피하면서 왼손 훅을 꽂아 넣기도 했다.
하지만 정마루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정마루는 6라운드에서 저돌적으로 돌진하며 흐름을 바꾸려 했으나 결정타는 나오지 않았다. 이흑산이 9라운드부터 소극적으로 경기를 풀어가자 정마루는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조금씩 점수 차를 좁혀나가면서 마지막 12라운드 때 강력한 오른손 훅으로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돌려놨다. 이흑산은 다 잡은 경기를 놓쳤고, 정마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로 WBA 아시아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냈다.
또 한 명의 난민 복서 길태산(31ㆍ장 에뚜빌)은 앞서 열린 복싱M 주관 슈퍼미들급(76.20㎏) 한국 타이틀 매치에서 이준용(27ㆍ수원태풍체)을 6라운드 레프리 스톱 TKO로 꺾고 새로운 한국 챔피언이 됐다. 길태산의 프로 전적은 5전 5승(3KO)가 됐다.
이흑산과 길태산은 카메룬 군대에서 함께 복싱했다. 하지만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혹 행위까지 당했던 둘은 2015년 10월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출전을 앞두고 무작정 숙소를 이탈했다. 처음에는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해 추방의 공포에 시달렸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프로 복서로 조금씩 꿈을 키웠다. 먼저 이흑산이 지난해 5월 4전 만에 한국 챔피언에 올랐다. 이흑산은 같은 해 7월 마침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길태산 역시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11월에야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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