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최고위급 티베트 방문
美와 분쟁 대비 경기부양 지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최근 들어 부쩍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한 경기부양책 마련을 주도하는가 하면 화약고로 불리는 시짱(西藏ㆍ티베트)자치구도 방문했다. 절대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책임론 분산을 위해 이를 전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리 총리가 적극적으로 2인자 자리 되찾기에 나선 것인지 주목된다.
29일 중국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리 총리는 지난 25~27일 시짱자치구를 방문해 우잉제(吳英杰) 시짱자치구 공산당 서기와 함께 라싸(拉薩)ㆍ린즈(林芝) 등지의 경제ㆍ사회 발전 상황을 살펴본 뒤 중국 모든 민족의 단결을 강조했다. 통상 부총리나 국가부주석이 방문해 온 티베트를 총리급 이상 최고지도자가 방문한 것은 1990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공산당 총서기 이후 처음이다.
리 총리의 이번 시짱 방문은 시 주석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중동ㆍ아프리카를 순방하며 우군을 확보하는 ‘외치’에 전념하는 기간에 ‘내치’ 안정을 도모한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티베트인들은 1951년 무력으로 중국에 병합된 뒤 끊임없이 독립을 추구해 왔고, 역대 중국 지도자들에겐 이 지역 안정 유지가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리 총리는 시 주석과 각각 내정과 외교를 분담하는 최고지도자의 면모를 과시한 셈이 됐다.
총리 권력 회복 가능성보단
시진핑 부정적 여론 의식한
권력ㆍ책임 분산 전략인 듯
리 총리는 시짱 방문 전날인 지난 24일엔 국무원 상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내수 확대를 위한 재정ㆍ금융정책 강화를 지시했다. 이 역시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수출 증진에 초점을 맞춰 온 거시경제정책 기조를 감세와 인프라 투자 확대 등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시 베이징(北京) 외교가에선 리 총리가 평소 주장해 온 경기부양 기조를 전면화하며 경제정책 총괄자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사실 리 총리는 지난해 10월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황제권력을 틀어쥔 뒤 권력 핵심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전통적으로 총리가 관장해 온 경제정책 주도권은 시 주석의 책사인 류허(劉鶴) 부총리에게 넘어갔고, 그의 정치적 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도 거의 와해된 상태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촉발된 뒤 지식인층과 공산당 내부에서 시 주석 책임론이 직간접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관영매체들도 리 총리의 행보에 포커스를 맞추는 등 최근 표면적으로는 2인자 위상을 되찾아 가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리 총리의 실질적인 권력기반 강화로 보기는 무리라는 게 대체적 해석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시 주석의 권력기반은 여전히 굳건하고 무역전쟁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시 주석에게 집중될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시 주석 측이 리 총리의 공개 행보를 용인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최근 중국 내에서 시 주석 우상화에 대한 비판과 시 주석에 부정적인 각종 소문에 대한 통제가 다소 느슨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환학자로 일본에 체류 중인 쉬장룬(許章潤) 칭화(淸華)대 법학원 교수는 최근 자유주의 계열 싱크탱크인 톈쩌(天則)경제연구소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시진핑 1인 체제를 비판하며 국가주석 임기제 복원을 촉구했다고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 쉬 교수는 이 글에서 “집권자의 국가운영 방식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면서 “독재 회귀를 경계하고 개인 숭배를 저지하며 국가주석 임기제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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