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훈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해방 후 원산으로 이사했고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미 해군 전차 상륙함 LST(Landing Ship Tank)를 타고 월남했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그랬듯이 남과 북의 어느 쪽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최인훈은 어떤 정치적 이념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작가의 의식과 언어와의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수많은 소설과 희곡 작품들을 창작했다.
언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남달랐다. 작가는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공간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 넓고 튼튼한 말(言)의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배를 타기 위해서는 뱃멀미를 견뎌내고 말의 바다에서 말의 폭풍과 싸우면서 말의 항구까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말의 배에서는 자기가 곧 선장이며 말의 바다를 두려워하고 땅에 집착하거나 한눈을 팔면 결국 말의 배는 난파하고 만다고 경고하였다. 이는 실제 그가 고등학생의 몸으로 LST를 타고 월남하면서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망망대해의 안개와 파도를 헤쳐 나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가 일생동안 소설과 희곡을 쓴 것은 곧 넓고 튼튼한 말의 배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가 만든 ‘말배’는 지금 항구에 정박해 있다. 우리는 이제 그가 만든 ‘말배’를 타고 드넓은 말의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 우리가 뱃멀미를 견디고 땅에 집착하거나 한눈을 팔지 않고 말의 바다를 두려움 없이 항해한다면 그가 말한 ‘문학의 언어가 질서 있게 운용되고 예술의 샘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문화의 낙토(樂土)’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영면을 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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