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쁜 젊은 날: 응답하라 1975-1980
진회숙 지음
삼인 발행ㆍ408쪽ㆍ1만5,000원
“예로부터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유명한 ‘학림다방’에 꼭 가본다. 미팅을 열심히 한다. 멋진 남자를 만나 멋진 연애를 한다. 학교 축제 때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쌍쌍 파티에 간다. 이대 입구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는다.”
쌍쌍 파티나 양장점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요즘 고등학생들이 상상하는 대학 생활과 그리 멀지 않다. 75학번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저자는 대학교에 가면 하고 싶었던 일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음악평론가 진회숙이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고하는 책이다. 친구들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추억부터 가슴 찢어지게 아팠던 실연의 기억까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더라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듯 빨려 들어간다.
대학에 입학한 후 데모에 가담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저자의 운명은, 1977년 어느 날, 서울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야학교사가 되면서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야학의 취지조차 알지 못했던 음대생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의 제안으로 야학에서 ‘특송(특별 찬송)’을 부르게 됐다. 이 담임목사가 1974년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가 구속된 김경락 목사였다.
저자가 회고하는 운동권의 첫 이미지는 이렇다. ‘같은 대학생임에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기득권을 내려놓고 신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저자는 그들에게 감명받아 “노트 정리까지 하며 극성스럽게 공부”했다. ‘전환시대의 논리’ ‘피압박자를 위한 교육’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역사란 무엇인가’ 등 당시 ‘불온서적’들을 독파해 나갔다. 야학에서 또래 노동자들을 만나며 얻은 깨달음도 있다. 대학에서 같이 음악 하는 친구들에 비해 늘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해 왔는데, 당시 대학에 진학한 것부터가 엄청난 특권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긴급조치와 계엄령 등 살벌한 단어가 난무하는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이 회고록은 시종일관 심각해야 할 것 같은데, 저자의 문체는 담담함을 넘어 유쾌하다. 예컨대 이화여대나 연세대 같은 기독교 학교는 “운동권 학생들의 ‘데모 본능’을 자극하는 천상의 환경을 갖추었다”고 평가 받았는데, 그 이유는 학생 수천 명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는 채플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야만을 구체적으로 펼쳐 놓을 때는 독자의 웃음기도 사라진다. 저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관악경찰서에 끌려간다. 뿌려 보지도 못하고 방 안에 보관하고 있던 유인물이 우연히 발견됐다는 이유다. 조사실에 들어가자마자 따귀를 맞고, 옆방에서 들려오는 고문 당하는 소리에 고통받았다.
75학번 세대에는 추억의 향연이고, 그보다 어린 세대들은 40년 전 자신을 돌아보는 저자의 의연함에 감동을 받을 듯하다. 저자의 기억 속 인물들은 대부분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제는 국회의원 등 유명인사가 된 익숙한 이름도 있고, 지금은 다른 노선을 가는 인물들의 당시 모습을 전해 듣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의 두 동생도 종종 언급된다. 여동생은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이고, 남동생은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동양대 교수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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