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준을 그렇게 한 게 옳았을까”
한밤중에 문득 아들에게 묻기도
병상에서도 ‘광장’ 판본을 찾아
여러번 고쳐 쓰고도 끝내 안 놓아
“어려운 생각 더는 마시고 그저
편안하게 주무세요” 딸 작별 인사
“윤구야, 내가 이명준을 그렇게 죽게 한 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언젠가 고 최인훈 작가가 아들 윤구(48)씨에게 했다는 질문이다. 늦은 밤 자다 깨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 아들을 불러 세워 그렇게 물었다. 25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윤구씨가 전한 이야기다. 고인은 생각에 빠져 자주 밤을 잊었다고 한다. 그날 고인에게 찾아왔던 건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었다. 이명준은 남에도 북에도 절망해 제3국에 가기로 하고 배에 올랐다. 이내 바다에 몸을 던졌다. 세상은 그 결말을 ‘냉전 이데올로기 극복 시도’로 해석하고 떠받들었지만, 고인은 다시 보기를 멈추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 집요함으로 고인은 ‘광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고쳐 쓰기를 멈추게 한 건 결국 죽음.
고인은 대장암을 앓았다. 봄 들어 몸이 급속도로 허물어졌다. 문학은 끝내 놓지 않았다. 윤구씨의 유족 인사. “병상에 누우셔서 단어 한마디조차 제대로 발음하실 수 없게 되셨을 때 힘겹게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캐릭터’. 당신의 서재에서 ‘광장’의 각기 다른 판본을 찾아다 읽어 드린 후 당신의 눈빛과 표정을 좇아 이제는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과 발이 되어 드리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문학 안에서 태어나지는 않으셨지만 문학 안에 사시던 아버지가 이제 문학 그 자체가 되려고 하시는구나.”
거장 작가 최인훈은 더없이 다정한 아빠였다. 윤구씨도, 딸 윤경(45)씨도, 84세로 떠난 고인을 ‘아빠’라 불렀다. “아버지. 불러 보니 무섭습니다. 늘 아빠라고 불렀던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보니 무언가 달라진 시간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아 무섭습니다.” 유족 인사에서 윤경씨는 그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우리집 가훈은 서로 사랑하자’라고 하시고는 받아 적는 저를 빙긋이 웃으며 내려다 보시던 아버지가, 글을 쓰시면 한 번 읽어보라 하시고는 옆에 앉아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웠냐고 물어보시고 인간과 시간과 기억을 공식으로 만들어 보라시던 아버지가, 세 살짜리 손녀가 벌 설 때 방문 뒤에 손 들고 서 계시던 아버지가 문득문득 많이 생각 날 것 같아 무섭습니다. 아버지 이제 어려운 생각 더는 하지 말고 그저 편안하게 주무세요.”
2001년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낸 고인은 정년퇴임한 뒤 은둔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영결식은 성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가, 문학평론가, 제자를 비롯한 100여명이 참석해 ‘최인훈다움’을 기렸다. ”처음 찾아 뵈었을 때 선생은 초인종 소리를 듣고도 한참 인기척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몹시 흐른 뒤에야 현관에 모습을 나타낸 선생은 셔츠 단추를 목까지 모두 채운 모습이셨습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추모사) “선생님은 명예욕을 거부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오로지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비범한 고결은 문학인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김병익 장례위원장 영결사) 고인은 경기 고양시 공원묘지 자하연 일산에 잠들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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