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산불 최소 80명 숨져
해안 구조자 700명 달하기도
“등뒤까지 쫓아오는 불길을 피해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최소 80명이 사망하는 등 그리스 역대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된 아테네 산불 생존자들이 전한 당시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의 강풍에 실려온 불길은 삽시간에 마을을 덮쳤고, 집이나 차에서 무방비상태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꼼짝 없이 화염에 갇혀 희생됐다. 살아 남은 자들은 무작정 해변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바다에 뛰어들어서도 불타는 파편들을 피해 헤엄을 치며 버텼다. 허우적대는 옆 사람을 도와줄 수 없을 정도로, 화마의 거센 습격 앞에 인간은 무력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 방송은 사상자가 집중된 아테네 인근 해안도시 마티의 생존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들은 휘몰아치는 강풍에 눈 깜짝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불길이 번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민은 “아테네 일대에 화재가 났다는 TV 뉴스를 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창문 너머로 나무가 흔들리는 게 보이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다”고 했다. 불길이 강력한 불꽃과 열기를 압축해 분사시키는 화염방사기처럼 느껴졌다는 주민도 있었다.
이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바닷가였다. 로이터는 해안경비대와 민간 어선 등이 해안에서 구조한 사람이 700명에 육박하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사람도 19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생사의 고비를 넘어서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마티 해안가가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 꼭대기에서 어린 아이와 여성이 다수 포함된 26명의 불탄 시신이 서로 꼭 부둥켜 안은 채 발견됐다. 구조 당국은 이들이 해안가로 내려가는 대피로를 찾다 연기에 휩싸이면서 방향을 잃자, 체념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변가와 불과 15m 떨어진 곳에서, 구조선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다에 빠져 숨진 사람도 있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비극을 겪고 있다”며 24일부터 사흘 동안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그리스 당국은 아테네 외곽에서 여러 건의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에 비춰 이번 산불이 방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채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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