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심리지수가 2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며 현 정부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입가격 대비 수출가격 수준을 나타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도 3년 7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경기 둔화 우려 속에 하반기 경기를 지탱할 양대 축으로 꼽히던 소비와 수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25일 한국은행의 ‘7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105.5)보다 4.5포인트 하락한 101.0을 기록했다. 지난달(-2.4포인트)에 이어 두 달 연속 급락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4월(100.8) 이후 최저치다. 낙폭은 최순실 사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이 겹쳤던 2016년 11월(6.4포인트) 이래 가장 컸다.
CCSI를 구성하는 6개 지수 모두 하락했다. 향후경기전망(-9포인트) 현재경기판단(-7포인트) 등 경기 전반에 대한 체감을 보여주는 지수의 낙폭이 특히 컸다. 한은 관계자는 “미중 무역갈등 심화, 고용 지표 부진, 유가 상승, 주가 하락 등으로 소비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발표된 ‘6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선 수출 여건 악화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달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전년동월(100.64) 대비 7.3% 하락한 93.29를 기록했다. 1년 전엔 상품 100개를 수출한 돈으로 그 이상을 수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수출가격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수입 가능한 상품이 93개 수준으로 줄었다는 의미다. 지수 값은 2014년 11월(92.4) 이래 최저, 지수 하락률은 2012년 4월(-7.5%) 이래 최대였다.
교역조건 악화는 유가 상승의 영향이 컸다. 기름값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그만큼 오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입물가에 영향을 준 5월 원유 계약 가격은 두바이유(배럴당 74.4달러) 기준으로 1년 전보다 46.7% 올랐다. 물론 유가가 상승하면 석유화학ㆍ정제 등 원유 가공 수출품 가격도 오르지만, 석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수입가격 상승폭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생산, 고용 부진에 이어 그나마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던 소비, 수출 지표까지 악화되면서 경기가 예상보다 급속히 하강할 수 있다는 우려는 더 커졌다. CCSI는 민간소비 흐름을 3개월가량 앞서 보여주는 선행지표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는 심리 개선과 더불어 고용을 통한 소득 증가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앞으로도 고용 사정은 나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 실질소득(구매력) 및 경상수지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꼽히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이달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두바이유 6월 계약 가격의 상승폭(58.4%)이 지난달보다 높기 때문이다. 수출 여건이 나빠진 상황에서 물량까지 줄어들 경우 경상수지 악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반도체 및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 확대, 반도체 경기 둔화 등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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