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정치자금법 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모금이 불가능한 많은 원외 정치인들이 불법자금 유혹에 빠지지 않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생을 노동자와 약자 편에 섰던 고인조차 지킬 수 없었던 비현실적 규정이라면 정치권이 힘을 모아 정치자금 제도를 고치는 것이 타당하다.
후원회를 통해서만 모금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현행 정치자금법 덕분에 우리 정치판의 고질적 병폐였던 고비용 정치구조가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2004년 ‘차떼기 사건’이라는 불법 정치자금 파동 이후 정치자금을 모으는 입구를 후원회로 제한하고 지구당 폐지로 출구도 틀어막는 ‘오세훈법’이 도입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구당이 당협위원회로 바뀌었지만 지역구 관리나 선거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정치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청목회 사건’이나 ‘성완종 리스트’ 같은 편법ㆍ불법 정치자금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행 법이 현역 의원과 거대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는 게 문제다. 중앙선관위가 정당에 배분하는 국고보조금의 절반이 교섭단체에 우선 배분되고, 총선 120일 이전까지 정치 신인과 원외 인사의 후원회 등록을 불허한 제도는 특히 소수정당 소속 원외 정치인의 정치권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 의원이 드루킹의 돈을 받은 시점이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행 법은 원외 인사로서 선거자금에 쪼들리던 고인을 옭아맨 굴레가 되었을 것이다. 노 의원조차 못 지킬 이런 불합리하고 부당한 제도라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뜯어 고치는 게 마땅하다.
다만 정치권은 정치자금법 개선 논의와 함께 여전히 고비용인 정치구조를 바꿀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노 의원의 죽음을 계기로 법인과 단체의 후원을 허용하는 등 정치자금의 입구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낡은 정치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국민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도 정치자금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의원 밥그릇 늘리기’라는 싸늘한 여론에 번번이 좌절됐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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