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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배달원에서 '청주 대표 전통주'를 키워낸 농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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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배달원에서 '청주 대표 전통주'를 키워낸 농촌운동가

입력
2018.07.25 17:36
수정
2018.07.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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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농업회사법인 조은술세종 경기호(왼쪽)·이승애 공동대표. 김태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농업회사법인 조은술세종 경기호(왼쪽)·이승애 공동대표. 김태헌 기자

 ※편집자 주: "10~20년 후 농민이 스포츠카 타는 시대가 올 것"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 말이다.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농사짓는 기자’가 대한민국의 ‘촉망받는 농업 CEO’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저는 농업인이고, 농촌활동가예요.”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농업법인 ‘조은술세종’의 경기호(56) 대표는 자신을 농업인이자 농촌활동가라고 이야기한다. 경 대표는 막걸리 배달원을 하다 “제대로 된 전통주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2007년 지역의 폐업 양조장을 인수해 청주의 대표 전통주 브랜드로 성장시킨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2007년 기존 막걸리의 주원료였던 수입 쌀과 밀 대신 국내산 쌀로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 모두 “국내산 농산물을 사용하면 상품 가격이 올라 경쟁력이 없다”며 만류했지만 “농촌활동가인 내가 수입 쌀을 쓸 수는 없다”며 끝끝내 국내산 원료를 선택하는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지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야심 차게 내놓은 국내산 쌀 막걸리는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니 경영 환경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사업 존폐를 고민하던 2009년 기회가 찾아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막걸리 ‘열풍’이 전국에 불기 시작한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조은술세종 전경. 김태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조은술세종 전경. 김태헌 기자

‘웰빙’ 열풍이 더해지면서 국내산 쌀을 이용한 세종의 막걸리는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등 해외에서도 주문이 쏟아졌다. 직원을 더 뽑고 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일을 했지만,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더욱이 2010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월드컵 16강’ 대표 막걸리에 선정되면서 그야말로 겹경사가 났다. 소위 ‘대박’이 터진 것이다.

국내산 쌀 막걸리가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경기호 대표는 본격적으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막걸리를 속속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땅콩, 알밤, 잣, 옥수수, 민들레, 유자, 쌀, 제주바나나, 검은콩, 조, 복분자 등 20여 종의 전통주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유기농 쌀로 만든 증류 소주 ‘이도’까지 내놓으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경기호 대표가 우리 농산물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인이기 이전에 농업인이고 농촌운동가라는 신념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인 이윤추구보다 농촌과의 상생이 그의 궁극적 기업 운영 목표다.

자녀 교육 때문에 농촌운동을 하던 충북 괴산을 떠나 청주로 옮겨왔지만 경 대표의 마음속에는 항상 농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농촌운동가가 농촌을 떠났다는 게 지금도 굉장히 미안하지요. 내가 농촌이 아닌 곳에서도 농촌운동을 하겠다, 그걸 찾아보자 한 것이 바로 전통주에요.”

[저작권 한국일보] 조은술세종에는 수십여 개의 항아리가 양조장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항아리에 경기호 대표의 아내인 이승애 공동대표의 시가 쓰여있다. 김태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조은술세종에는 수십여 개의 항아리가 양조장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항아리에 경기호 대표의 아내인 이승애 공동대표의 시가 쓰여있다. 김태헌 기자

경기호 대표는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대로 된 전통주만이 ‘태어나고 자란, 지켜야 할 농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가 망하지 않고 직원 월급만 줄 수 있으면 됩니다. 회사는 소비자와 농촌을 잇는 상생 징검다리예요.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도 하고요.”

‘대표님’이라는 직위 대신 ‘농촌운동가’라는 말이 더 좋다는 경기호 대표를 만나 전통주 기업이 농업과 상생하는 방법을 들어봤다.

[저작권 한국일보] 조은술세종의 양조장. 김태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조은술세종의 양조장. 김태헌 기자

- 주변에서 농촌운동가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나 자신도 농촌운동가라 생각한다. 젊을 때 농민 후계자였고 낙후된 농촌을 개선해보자는 ‘사에이치(4H) 운동’도 했다. 녹색성장을 이뤄보고자 쌀, 고추, 담배, 양봉, 축산까지도 해봤다.

농촌운동을 하며 농촌에 살고 싶었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도시로 나오게 됐다. 아내가 아이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오더니 큰 도시로 나가자고 하더라.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내가 농촌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 담임 선생님의 계속된 설득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농촌을 떠나 이곳 청주로 오게 됐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다.”

- 전통주 제조가 쉽지 않을 텐데…

“할 줄 아는 건 농사밖에 없었고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당장 가족들과 입에 풀칠은 해야 하지 않나.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다 막걸리 공장 배달 일을 시작했다. 명색이 농촌운동가였는데 막걸리 상자를 나르고 있으니 당시에는 너무나 창피했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싶어 숨어다니며 배달을 했다.

지역에 전통주 납품을 하면서 전국 양조장들을 돌아다녔는데 정작 내가 사는 청주에는 대표 전통주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청주 대표 전통주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일을 시작한 것이 벌써 11년이 됐다. 전통주 유통까지 더하면 25년이다.”

- 당시의 전통주 산업은 하향산업 아닌가?

“그렇다. 내가 인수한 양조장도 경영난에 문을 닫은 곳이었다. 술은 그 사회의 문화다. 청주에만 문화가 없는 셈이었다. 주변 지인들도 전통주 산업은 하향산업이라고 말렸다. 나는 농업인이니 좋은 농산물을 써서 좋은 전통주를 만들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유통은 이미 해봤으니 잘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께 배운 막걸리 담그는 기술과 내가 전국을 돌며 보고 느낀 양조장의 동선, 효모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은술세종에 녹여냈다.”

- 3년 만에 농림축산식품부 대표 막걸리로 선정됐다.

“예전 막걸리들을 보면 전부 수입 쌀이나 밀을 이용했다. 나는 양조장을 시작한 이유가 돈만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우리 농산물을 더 소비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쌀로 만들어야겠다고 만든 국내산 쌀 막걸리가 농림축산식품부 월드컵 16강 막걸리로 선정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에는 국내산 쌀로 만든 막걸리 자체가 틈새시장이었다.

물론 운도 좋았다. 쌀 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막걸리 열풍이 불었다. 일본에서도 난리가 났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지역 막걸리 업체들에는 오히려 이런 갑작스러운 인기가 위기였다. 큰 기업의 막걸리들이 지방까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이다. 우리는 농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막걸리가 있었기에 타격이 덜했다. 이런 경험을 얻고 나니 해외로 유통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은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5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전통주 제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

“전통주는 발효가 생명이다. 발효는 온도와 시간 등 일부 환경만 잘 조절하면 좋은 술이 빚어진다. 물론 실패도 많았지만 이런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속도가 붙었다. 실패해 버리는 술도 많다. 지금은 그런 데이터들을 모으고 연구해 더 좋은 술을 만들 수 있다.”

-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전통주가 있나?

“유기농 막걸리를 만들었다. 수입 쌀을 쓰는 막걸리보다 더 비싼 게 사실이다. 이 술은 와인처럼 고급 이미지로 나갈 생각이다. 사실 이미 개발된 전통주도 많지만 다 말할 수는 없다. 하나만 더 말하자면 ‘고추소주’도 있다. ‘이도’라는 증류주에 고추를 넣어 만들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몸에 열을 내기 위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던 기억에서 출발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술이다.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지만 좀 더 완성된 상품을 위해 출시는 미뤄뒀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태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태헌 기자

- 유기농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유기농업이 활성화되면 땅이 살고 지하수가 산다. 자연이 살면 농촌 환경도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조은술세종에서는 매년 20~30t의 유기농 쌀을 소비하는데 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4만~6만 평의 유기농지가 필요하다. 유기농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고 자연을 살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농촌에 농약을 뿌렸나. 농약을 뿌리면 지하수가 죽고 생물도 죽는다. 결국 영향은 사람에게까지 간다. 유기농 생산이 늘어야 유기농 땅이 많아지고 그래야 사람도 살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최고의 술을 만들겠다. 전통주 사업을 계속할 날이 대략 25년쯤 남았다. 걸어온 만큼 시간이 많이 남은 게 아니다. 회사 운영을 위해 돈을 버는 술도 만들어야겠지만, 이제는 좋은 술을 만들어 남겨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기본적인 가치를 헤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왜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쌀 소비가 일어나는 쪽이 어디인가? 42% 증류소주 이도 한 병은 막걸리보다 쌀이 7배 더 들어간다. 쌀 소비에 월등하다는 뜻이다. 쌀을 많이 소비해야 쌀농사를 짓는 농업인도 잘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기농 쌀과 우리 농산물을 최대한 많이 소비할 수 있는 전통주를 만들어 가고 있다.”

- 대를 잇는 양조장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모두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첫째는 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 공무원으로 일한다. 둘째는 로스쿨을 준비하다 군대에 갔다. 지금으로서는 각자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회사가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개인 회사가 아닌 직원들의 회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양조장의 일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고 있다. 대를 잇는 양조장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농촌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주=김태헌 기자 1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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