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여자가 남자의 세 곱” 아픔의 바다 제주 관탈섬

입력
2018.07.28 10:00
수정
2018.07.28 14:22
0 0

제주는 절해고도다. 전남 목포에서 142km, 부산에서 268km, 일본 쓰시마와는 240km 떨어져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범위를 넓혀 보면 동으로 남해와 동지나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나가사키현, 서로는 동지나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의 상하이, 북으로는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바다 한가운데의 외딴 섬이라 할 수 있다.

제주에서 보는 추자군도와 그 너머 전라도. 왼쪽 아래가 관탈섬이다.
제주에서 보는 추자군도와 그 너머 전라도. 왼쪽 아래가 관탈섬이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요즈음 제주에서 저 멀리 추자도와 그 너머 전라도 땅까지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절해고도 제주에서 한반도의 끝자락인 전라도가 보일까 하는 의문은 한라산 중턱 연대(煙臺, 봉수에 설치한 대)의 실존 여부에도 적용된다. 백록담 북쪽에 위치한 왕관릉이 과거 제주에서 육지로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연대였다는 기록에 대한 의문이다.

확실한 것은 1년에 10여 일에 불과하지만 제주에서 육지의 섬들이 보이는 화창한 날도 있다는 것이다. 대개는 추자도가 보이는 경우이고 예외적으로 청산도와 여서도, 고흥반도까지 보일 때도 있다. 어느 상황에서나 제주에서 볼 때 맨 앞에 보이는 섬은 관탈섬이다. 관탈섬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섬이다. 제주해협, 제주와 육지부를 가르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1601년 제주에서 길운절의 모반 사건이 발생하자, 조정에서는 김상헌을 어사로 보내 제주 주민들을 위로하게 했다. 당시 김상헌이 쓴 일기체 형식의 남사록(南槎錄)에 제주 뱃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우선 제주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 왜구가 중국을 왕래할 때 제주와 추자 사이의 바다를 통과한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지방 사람들에게 들은 화도 주변 바다에 대한 기록이 이어진다. ‘추자와 제주 사이에 ‘화탈’이 절반이 된다. 서쪽의 두 화탈로부터 동쪽 동여서 사이를 가리켜 수종(水宗)이라 한다. 그 사이는 바다 빛깔이 시퍼렇고 물이 땅에 쌓인 것이 매우 깊고 멀다. 그 때문에 파문이 매우 너르고, 높은 물결이 보통과 달라서 만약 이국 배가 표류하여 여기에 당하고 10분 동안에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3~4일이 지나도 멀리 가지 못하고 물결 도가니 사이에 맴돌게 된다. 이 때문에 왜구 중 중국으로 향하는 자가 바람을 잃어 헤매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여기를 거치지 아니한다. 생각하건대 여러 바다 중에서 이곳 물의 세기가 배를 운항하기 더욱 어렵게 한다’라는 내용이다.

멀리서 본 작은관탈섬
멀리서 본 작은관탈섬
해질녘의 작은관탈섬
해질녘의 작은관탈섬

김상헌은 화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옛 책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큰화탈섬은 추자도의 먼 서쪽에 있어 석봉이 높이 솟아 있다. 그 꼭대기에는 샘이 있으나 나무는 없으며, 풀은 있는데 부드럽고 질겨서 가져다가 기이한 물건을 만들만하다. 작은화탈섬은 추자의 서쪽 먼 거리에 있어서 석벽이 홀로 서 있는데, 크고 작은 두 섬 사이는 물결이 거칠어 배가 침몰되는 일이 많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매우 괴로워한다’고 적고 있다. “내가 보니 대화탈도, 소화탈도 둘 다 추자의 정남에 있고 큰 섬 위에는 역시 임목(나무)이 있어 겨울에도 푸르고 무성하였다”라며 자신이 직접 본 모습도 덧붙였다.

1771년 제주 애월 출신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육지로 향하다 폭풍을 만나 오키나와까지 표류했던 장한철도 당시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붓 끝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리 있는 돛배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곧 작은화탈도와 큰화탈도’라고 묘사하고 있다.

화탈은 관탈섬의 다른 이름으로 과탈, 곽개, 화도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 육지에서 제주로 오는 배가 추자도를 거쳐 이곳에 이르면 험로를 벗어났다 하여, 또는 유배인들이 마침내 유배의 신세를 절감하며 갓을 벗는다고 하여 관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통 관탈섬이라 하면 큰관탈섬과 작은관탈섬을 아우르는 표현인데, 이 중 큰관탈섬은 제주시 도두에서 26.6km, 하추자도 신양리에서 22.5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섬은 동서 300m, 남북 200m 길이의 사각형상이다. 섬의 동서 방향에 작은 바위섬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수평절리가 발달해 있다. 현재 섬 정상(81m) 부근에 무인등대와 중계기 시설이 세워졌고, 동북쪽에서 등대까지는 시멘트 계단이 설치돼 있다.

섬 전체가 암반이고 식수원이 없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지만,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환락의 섬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추씨 집안 사람들이 살았는데, 얼마나 타락했는지 하늘에서 벌을 내려 그들의 꿈에 계시하기를 모두 떠나라고 한 후 섬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다. 추자10경의 하나인 ‘곽개창파’는 관탈섬 곽개의 무심한 푸른 파도를 노래하고 있다.

작은관탈섬은 제주 도두에서 23.5km, 하추자도 신양리에서 29km, 큰관탈섬으로부터는 남서쪽으로 8.5km 떨어져 있다. 암반 자체가 급경사의 원추형으로 솟은 형태인데, 바로 옆에 두 개의 바위가 섬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주로 낚시꾼이 많이 찾는데, 추자보다는 제주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관탈섬 전경.
작은관탈섬 전경.
무인등대가 설치된 큰관탈섬(화도).
무인등대가 설치된 큰관탈섬(화도).
화도 정상 부근의 무인등대.
화도 정상 부근의 무인등대.
화도 무인등대로 오르는 길.
화도 무인등대로 오르는 길.

김상헌도 언급했듯이 이곳은 물길이 거세 배가 난파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제주사람들에게는 바다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시련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남사록에는 김상헌이 제주사람 손효지에게 들은 이야기도 기록돼 있다. “우리 제주는 멀리 대해 가운데에 있어 파도가 다른 바다에 비하여 더욱 사납다. 때문에 늘 다니는 배와 상선도 표류하고 침몰하는 것이 열에 대여섯이 되고, 섬사람들은 표류에 죽지 아니하면 반드시 침몰하여 죽는다. 때문에 제주지경 안에는 남자 무덤은 적고 여자는 많기가 남자의 세 곱이나 된다. 이러한 이유로 부모 된 자로서는 여자를 낳으면 반드시 말하기를 얘는 우리를 잘 섬길 아이라 하고, 남자를 낳으면 다 말하기를 우리 애가 아니라 곧 고래의 먹이라 한다”고 그 아픔을 말하고 있다.

요즘은 연간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드나든다. 고운 바다 빛깔뿐만 아니라, 푸른 바다에 서린 제주도민의 아픔과 설움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