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판단” 유서에 후회 남겨
가족ㆍ측근으로 수사 확대 고뇌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극단적 선택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수사에 따른 심적 고뇌 등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추정된다. 관련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바른 정치를 스스로 깼다는 자괴감과 책임감, 수사가 자신의 가족과 측근으로 번질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 원내대표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49ㆍ구속기소)씨 측으로부터 5,000만원 가량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의혹은 당시 경찰과 검찰 수사를 거치며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무혐의 처분 근거가 된 증거물을 김씨 측이 조작했다는 것이 특검 입장이다.
노 원내대표가 속한 정의당은 애초 드루킹 특검에 반대 입장이었는데, 5월 18일 노 원내대표 포함 여야 4당 원내대표가 모여 진통 끝에 ‘드루킹 특검법’에 전격 합의했다. 그렇게 시작된 특검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자금 전반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파로스’ 김씨 등을 소환하며 경공모 자금 흐름을 추적해 나갔다. 이어 노 원내대표에게 5,000만원을 건네고 그 증거를 위조한 혐의(정치자금법위반ㆍ증거위조교사) 등으로 경공모 회원이자 노 원내대표 경기고 동창인 도모(61)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사실상 노 원내대표와 측근들 소환조사를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의혹은 언론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2016년 3월 김씨 측이 노 원내대표에게 2,000만원을 건넨 정황, 3,000만원이 노 원내대표 부인의 전 운전기사에게 전달된 의혹 등이 나왔다. 자신뿐 아니라 측근들까지 조사를 받게 될 상황에 놓이자 압박감과 책임감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 원내대표는 특검 수사 초기,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적극 해명하며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 17일 특검이 브리핑을 통해 도 변호사의 긴급체포 경위를 설명하며 “‘특정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사실상 노 원내대표를 지목했을 때도, 노 원내대표 측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여야 원내대표 공동 방미 출장 중이던 지난 20일 특파원들과 만나서도 “어떠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성실하고 당당하게 (조사에) 임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 원내대표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는 그가 떨치지 못한 책임감과 괴로운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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