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연말까지 실태 파악해
충돌 방지ㆍ저감 방안 마련키로
맹금류 스티커 붙어 있어도
듬성듬성해 충돌 막기 어려워
“무늬 따라 5~10㎝ 간격 유지
건물엔 줄 늘어뜨려도 효과적”
지난 17일 오전 찾은 서울 양천구 신정로 도로 옆 한 아파트 방음벽 아래에는 10㎝ 크기의 작은 새 열 마리가 죽어있었다. 흔히 ‘뱁새’라고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아홉 마리와 어린 박새 한 마리였다. 8m 높이의 투명 방음벽에는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가 여러 장이 붙어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날 동행한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은 “몸집이 작은 새들은 스티커가 없는 낮은 높이의 방음벽에도 부딪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도심 속 새들이 방음벽과 건물에 부딪혀 죽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 실태 조차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방지대책도 전무할 수밖에 없다.
24일 환경부에 따르면 조류 충돌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라 국립생태원에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 연구 용역을 맡겨 실태 파악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연말에 나오는 최종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건물 유리창과 방음벽의 조류 충돌 피해량을 파악하고, 충돌 방지와 저감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립생태원은 연 2,490만 마리의 새들이 건물이나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캐나다의 인구와 건물 수, 밀집도, 종류 등을 국내와 비교한 결과 국내에서 연 1,000만 마리의 새들이 충돌로 인해 사망할 것으로 추정한다. 실태 파악을 위해 국립생태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전국 건물과 방음벽 27곳을 선정해 월 2회 조류충돌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은 이 가운데서도 조류 충돌이 잦은 대전 반석동에 있는 12m 높이의 방음벽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16일부터 올해 7월9일까지 이곳을 2주에 한번씩 찾은 결과 최소 25종 148마리 조류 사체가 발견됐다. 멧비둘기, 직박구리를 비롯해 멸종위기 2급인 긴꼬리딱새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까지 다양했다. 김 부장은 “이곳에서만 연간 500마리 이상 폐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방음벽이나 건물에 스티커가 붙어 있어도 조류가 충돌하는 것은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은 공간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작은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스티커를 빼곡히 붙여야 한다. 국립생태원은 세로무늬의 경우 두께는 6㎜ 이상, 간격은 10㎝ 이내, 가로무늬의 경우 두께는 3㎜ 이상, 간격은 5㎝ 이내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스티커 모양이 꼭 맹금류일 필요는 없다. 사람보다 시각이 뛰어난 새들의 경우 맹금류 스티커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방음벽이 아닌 건물의 경우 아크릴 물감이나 줄을 늘어뜨리는 것만으로도 새의 충돌을 막을 수 있다.
민간 건물의 경우 새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게 국립생태원 측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연말 시민들을 위한 조류충돌 가이드라인 발간도 계획하고 있다. 김 부장은 “온라인 자연공유플랫폼 네이처링에 조류 충돌 발견 시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었다”며 “시민들의 참여가 더해지면 조류 충돌의 실태를 더욱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해 건물 외벽에 아크릴 물감을 바른 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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