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컴프레서’는 압축공기를 분출해 굴삭기나 작업자의 옷에 묻어 있는 흙ㆍ먼지 등을 제거하는 장비다. 경기 화성시의 중소기업 ‘이노코퍼레이션’은 지난 2010년부터 굴삭기에 장착되는 에어컴프레서를 두산인프라코어에 연간 3,000여대(납품규모 연간 15억~20억원) 납품했다.두산인프라코어는 원가절감을 이유로 이노코퍼레이션에 납품단가 18% 인하를 요구했다. 이노코퍼레이션이 이를 거부하자,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노코퍼레이션의 에어컴프레서 제작도면 31장을 다른 협력사인 A사에 넘겼다. 이후 A사는 이 도면을 토대로 에어컴프레서를 소형~대형 굴삭기용 등 순차적으로 개발, 2016년 7월부터 두산인프라코어에 납품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원가를 10% 감축할 수 있었고 2017년 8월 이노코퍼레이션과 거래도 끊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두산인프라코어에 과징금 3억7,9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관련 실무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9월 “기술유용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며 기계ㆍ전자 업종을 대상으로 직권조사에 나선 후 나온 첫 제재다. 최무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두산인프라코어는 작년 7월 굴삭기 부품인 ‘냉각수저장탱크’를 납품하는 코스모이엔지가 단가 인상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한 뒤 해당 부품의 도면 38장을 5개 사업자에 넘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하도급 업체의 도면을 다른 업체에 넘긴 도의적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기술 탈취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이노코퍼레이션의 도면을 새로운 공급처가 될 회사에 넘겨준 것은 2016년이지만 이 회사가 기술개발을 완료한 것은 2015년”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제품을 개발하려면 단면도 등 상세한 도면이 필요한데 이노코퍼레이션의 도면은 제품 외관과 치수 등이 나온 ‘승인도’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도면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성경제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도면에 나오는 볼트와 너트의 각도, 크기 등 세부치수는 제품을 개발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이 이노코퍼레이션의 제작도면을 두고 주고 받은 내부 이메일에 기술탈취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있다”고 반박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기술유용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기술유용으로 단 1차례만 고발돼도 공공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술유용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도 현행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10배 이내’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 국장은 “대기업의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중소기업의 혁신 유인을 저해함으로써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중대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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