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안녕달 그림책 ‘안녕’ 출간
외로운 이들의 따뜻한 연대 그려
어린이 그림책, 이라고 하면 보통 10~20여쪽 짧은 분량의 책을 떠올린다. 그런데 264쪽에 이르는 그림책이 나왔다. 안녕달 작가의 ‘안녕’(창비)이다.
가명 ‘안녕달’이란 이름을 쓰는 작가는 꼭꼭 숨어서 작업만 하지만, 그림책 세계에선 유명한 작가다.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물이 아니라 수박 안에서 수영하는 이야기 ‘수박 수영장’으로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이어 내놓은 ‘할머니의 여름휴가’로 제57회 한국출판문화상(어린이ㆍ청소년부문)을 수상했다. 따뜻한 주제의식을 특이한 상상력, 그것도 아주 천연덕스러운 상상력과 맑은 수채화 느낌의 그림에 담아내면서 어린이, 어른 모두에게 호응을 이끌어냈다.
‘안녕’은 그림책으로서 아주 새로운 실험이다. 1~4부로 나눠 264쪽, 662컷의 그림을 쏟아 낸 분량이 우선 그렇다. 그림도 자유자재다. ‘한 컷’이 주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타넘는 기법을 의도적으로 쓴다. 따뜻한 주제의식도 여전하다.
저 머나먼 어떤 곳에 외롭게 홀로 늙어가는 소시지 할아버지가 산다. 어느 날 지구별가게를 지나치다 고양이의 인기 때문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주인이 팔려다 지쳐 그냥 내놓은 강아지를 불쌍하다고 거두어 키운다. 이 강아지는 나중에 머리가 폭탄인 아이, 그리고 머리가 불기둥인 아이를 함께 만나 편안하게 잠든다. 이승에 남겨진 강아지가 신경 쓰였던 저승 세상의 소시지 할아버지는 이 광경을 보고선 마침내 안심한다. 이 우주에서 홀로 남겨진 이들이 서로 의도치 않게 우연히 만나 서로 포개면서 기대어 사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했다.
서늘한 상상력도 있다.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소시지다. 그래서 소시지 할아버지는 자신의 강아지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우주복을 껴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어떻게든 직접 접촉은 피하려 든다. 그러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이게 괜한 걱정, 그리고 오해에 불과했다는 극적 깨달음을 얻지만, 천연덕스럽게 긴장을 높여가는 그림이 제법 조마조마하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홀로 늙어가는 소시지,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강아지, 숲에 버려진 불꽃과 손잡은 폭탄아이처럼 뼈아픈 이별의 두려움을 아는 이들끼리 서로에게 깊이 있게 정드는 과정을 그려냈다”며 “우리가 흔히 ‘그림책은 이런 것이야’라고 알게 모르게 생각하는 틀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위반하고 넘어서는 지점들이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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