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Huns)은 아시아 대륙에서 발흥해 서러시아에서 세를 키운 뒤 4세기 말 우랄 산맥을 넘어 유럽 대륙을 휩쓴 기마민족이다. 그들은 압도적인 기동력과 궁술 등 전투력으로 슬라브, 동고트 족의 영토를 잇달아 침략, 동쪽으로 카스피해와 라인강 어귀까지 장악한 뒤 정복군주 아틸라(Attila, 410~453)가 갑자기 숨지면서 급격히 분열, 마자르 족 등 유럽 민족에 급격히 동화ㆍ흡수돼 역사에서 종적을 감췄다.
기원 전 몽골과 중국 북부를 거점으로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제국의 주인 흉노가 궁술에 능한 기마민족이어서 훈의 뿌리라는 설이 있지만 확증은 없다. 그들은 한 세기에 걸친 게르만 족의 대이동(동진)을 낳아 로마제국(서로마)의 멸망과 유럽 중세 봉건제의 기틀을 닦는 데 일조했다. 그런 점에서 훈족의 폭풍 같은 존재감(공포)을 가장 앞서 또 깊이 각인한 민족이 게르만이었을지 모른다.
청나라 말 중국 산둥(山東) 화베이(華北) 지역을 휩쓴 ‘의화단의 난(1899~1901)’은 외세 배척 민족자강운동이었고, 직접적인 계기는 제국 독일의 산둥성 점령(1897)이었다. 그들은 베이징의 독일대사를 살해하고 외세에 선전포고 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진압부대를 편성했다. 1900년 7월 27일, 독일 브레머하펜(Bremerhaven)항에 집결한 진압군을 독려하며 빌헬름 2세는 훈족의 공포를 언급했다. “용서도 없고, 포로도 없게 하라. 1,000여년 전 훈의 황제가 구축해 지금도 건재한 그 명성처럼, 어떤 중국인도, 그들의 눈이 찢어졌건 말건, 감히 독일인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도록 하라.”
1차대전 연합군은 빌헬름 2세의 저 웅변을 독일 게르만을 조롱하는 데 재활용했다. 로마 문명을 짓밟은 훈의 야만을 독일 침략에 견주며, 게르만의 멸칭으로 그들을 ‘훈족(Huns)’이라 부르기 시작한 거였다. 전쟁공채 구매를 독려한 영국의 포스터 중에는 5세기의 훈족이 썼던 투구와 빌헬름 2세의 피켈하우베(Pickelhaube)를 나란히 두고 ‘Hun or Home?’, 즉 훈족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가정을 지킬 것인가라고 묻는 것도 있다. 독일인 중에는 지금도 이 말 ‘Hun’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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