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해고돼 이젠 30대 훌쩍
투쟁복 습관적 꺼내다 피식 웃음
“정부ㆍ국회도 다 안된다고 했는데…
버티고 버텨 결국 이런 날 왔다”
“부조리에 맞선 엄마로 기억되길”
“정부도 국회도 사법부도 다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왔네요.”
“오늘 아침에도 투쟁복을 꺼내려다 ‘아, 끝났지’ 했죠, 사원증이 나와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22일 아침은 전날까지 포함해 지난 4,526일과는 달랐다. 오미선(39) 김영선(37)씨는 한결같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20대 초반 투쟁을 시작한 이들은 어느덧 중년이 됐다. 해고 노동자라는, 그 지긋지긋한 꼬리표를 떼고 마침내 복직을 약속 받는 데 12년이 걸렸으니 그 회한이 오죽할까. 그들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도 어쩌면 실감이 안 날 것 같은 새날이 왔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전국철도노동조합이 2006년 해고된 KTX 승무원의 복직에 전격 합의한 21일. 서울역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김영선씨에게 두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이겼다면서, 끝났다면서.” 김씨가 “네 저희 마무리할 것 같아요”라고 답하자 두 할머니가 자초지종을 밝혔다. “항상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이렇게 더운데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는 게 마음이 아팠는데, 방금 밥을 먹으면서 식당에서 이겼다는 뉴스를 보다가 너무 기뻐서 축하해 주려고 일부러 찾아왔어. 축하해!” 김씨는 “또 막 너무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복직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프리랜서로 일해왔다. “투쟁하면서 다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다 보니까 투쟁 초반 3년처럼 싸우지는 못했죠. 다들 복직하는 날을 꿈꾸며 프리랜서로 일했고 나 역시도 프리랜서 웨딩플래너로 일했어요.” 복직이 결정되면 언제든지 원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는 “누군가 지금 하는 일과 KTX 승무원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동료들 대부분은 ‘KTX 승무원’이라고 답한다”며 “KTX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12년 넘게 버틴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미선씨는 너무 정신 없어서 21일은 그냥 지나갔다고 고백했다. 다음날인 22일 피식 웃었고 허탈한 기분에 이어 만감이 교차했다. “습관적으로 투쟁복을 꺼냈죠. 또 농성장에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함께 투쟁하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가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돈에 허덕이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를 위해 싸웠다고’,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울먹이던 오씨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30대를 투쟁으로 다 보내서 걱정이 없을 수 없죠. 그래도 어쨌든 일할 수 있는 한 사람의 국민이 돼서 너무 기뻐요. 앞으로 해결할 부분을 위해 계속 또 싸울 거에요.”
두 사람뿐 아니라 이번에 복직을 약속 받은 KTX 해고 승무원 180명은 눈물의 12년을 악착같이 버티어왔다. 빨갱이라고 매도 당하고, 동료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걸 지켜보고, 각자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잃지 않은 건 끈끈한 동료애와 연대의 힘이다. 김영선씨는 “나 하나가 무너지면 그것이 주변 동료들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견뎠고 버텼다”고 했다.
그만큼 그들이 건너온 12년은 신산의 세월이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주목을 받으며 2004, 2005년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KTX 승무원 300여명은 코레일의 ‘2년 내 정규직 고용’ 약속을 받고 입사했다. 그러나 매년 위탁업체(홍익회→한국철도유통→KTX관광레저)만 바뀔 뿐, 고용 형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2006년 3월 1일부터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코레일을 상대로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코레일은 사측이 자회사 KTX관광레저(현 코레일관광개발)로 이적을 거부한 승무원 290명을 그 해 5월 21일, 정리해고했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단식농성과 삭발투쟁, 쇠사슬로 몸을 묶은 연좌농성에, 서울역 뒤편 40m 높이 조명 철탑에 오르는 20여일간의 고공농성까지 하며 직접 고용을 요구했다.
2008년 11월 이 가운데 34명이 코레일에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이들은 1ㆍ2심에서 연이어 승소해 4년간의 임금 8,640만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15년 2월 대법원은 코레일과 KTX 승무원 사이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밀린 급여를 지급받았던 승무원들은 이자를 포함해 각자 1억원이 넘는 돈을 코레일에 되돌려줘야 했고 이를 비관한 한 승무원은 세 살배기를 남겨둔 채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작성한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에 KTX 승무원 판결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반전의 계기,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갈 길은 남아있다. 정미정(37) KTX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은 “실제로는 직접 고용이 아닌 특별채용 형식이라 아직 ‘절반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복직 이후에도 이 부분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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