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 기획] ‘한국인은 불안하다’
⑧최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은 대표적인 정신병이다. 하지만 조현병은 특정한 시기에 정신병적 증상을 보일 뿐이고 정신병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조현병이 첫 발병하거나 재발할 때 적절히 약물을 투여하면 며칠에서 몇 주일만 정신병적 상태가 잠시 나타난다. 하지만 치료도 어렵고 사회적 기능 저하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워 환자 피해도 크다.
조현병은 이전에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환자들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병명을 바꿨다. 정신분열병은 정신이 나눠지고 쪼개져 버려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상태를 의미하지만 조현병은 병의 상태를 느슨해지거나 너무 팽팽한 현악기의 줄을 잘 조율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회복의 희망을 담은 명칭이다.
그런데 정말 희망이 있나? 아니면 그렇게 되길 원하는 의사들의 희망사항일까? 희망사항만은 아닌 것 같다. 치료 핵심이 되는 항정신병약물이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1950년에 첫 항정신병약물을 사용한 이후 정말 큰 일을 해냈다.
정신병이라고 지칭되는 통제불능상태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약물 치료 전에도 치료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 치료법으로는 환자는 오랫동안 정신병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져 지내곤 했다.
항정신병약물로 정신병적 상태의 원인이 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불균형 상태를 해소해 매우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정신병 증상을 걷어내고 조현병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색다른 양상이었다. 큰소리치고 흥분하고 격한 동작을 하는 공포스러운 정신병 상태의 첫 인상과 달리, 둔감하고 소극적이고 소심한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라고, 집밖으로 나서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만나보라고 격려한다. 환자는 막막하지만 의사를 믿고 따르며 과감하게 시도도 한다. 하지만 환자의 뇌는 이런 부분에 큰 결점을 가지고 있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항정신병약물 발전에 한층 고무돼 약물로 병의 일부인 정신병적 상태를 호전시키는 약뿐만 아니라 ‘민낯’에 해당되는 침체된 환자까지 깨워 정상으로 돌려놓고자 노력 중이고 일부는 성공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개발됐던 ‘클로자핀’ 약물은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성공을 거둬 장기간 만성화된 조현병 환자를 깨워 사회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소위 ‘음성 증상’은은근하지만 더 고질적이고 바뀌기 어려워 사회복귀가 정말 어려웠다.
퇴원해 집으로 돌려보내지만 결국 사회 적응에 실패해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회전문 현상으로 정신병원은 항상 만원이었다. 의사는 진단하고 적절한 약물을 처방한다.
병이 문제였다면 이런 과정으로 다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회복을 위해선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사회적응이다. 기존 사회의 구성원들이 배려해주고 환자의 진입을 허락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 의사들 눈엔 갈 길이 멀다.
사회 불안을 일으키고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므로 회복한 후에 진입하라고 한다. 그런데 회복을 위해서 진입이 전제돼야 적응할 수 있다. 낙인은 이런 진입장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낙인은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찍히는 것이다. 회복돼 사회에 다시 스스로 섞일 수 있다면 낙인에 찍힐 일도 없겠다.
조현병은 예측 불가능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그런데 여전히 낙인을 찍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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