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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다프네 갈리치아의 죽음

입력
2018.07.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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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 위치한 섬나라 몰타는 면적이 대략 거제도만한 소국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끌려가던 중 배가 난파해 잠시 머물며 기독교를 전파했고, 중세 유적과 중동 분위기의 마을 때문에 로마나 중세 유럽 또는 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촬영지로 유명한 아름다운 관광지다.

수도 발레타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요새 같은 도시를 건설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섬을 지킨 성 요한 기사단을 기리는 대성당이다. 최근 방문한 이 곳에 왠 여인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대법원 건물을 마주한 항전 기념비에 붙어있는 사진 속 주인공은 지난해 폭살 당한 다프네 갈리치아 기자다.

몰타에서 1인 미디어로 활동하던 그는 2016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확인한 사상 최대의 조세 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토대로 조지프 무스카트 몰타 총리와 일가, 정부 관료들의 부정 부패 의혹을 블로그에 폭로했다. 이후 정체 모를 사람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고 급기야 지난해 10월 차량에 장치한 폭탄이 터져 참혹하게 사망했다.

그의 보도에 따르면 몰타는 조세 회피 천국이다. 그가 지목한 몰타의 일부 정치인들은 전세계 기업가나 부호들이 세금 회피처로 이용하도록 적극 지원하며 부를 축적했다. 돈이 모이면서 범죄 조직까지 이권 사업에 뛰어들어 떡고물을 나눠 먹었다. 아름다운 관광국가의 추악한 이면이 아닐 수 없다.

갈리치아 기자의 폭살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살해 용의자들은 잡혔지만 증거가 없었다. 분노한 몰타 국민들은 거리 곳곳에 갈리치아 기자의 사진을 붙이고 촛불을 켜놓았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은 그의 보도로 이권을 위협받게 된 사람들을 의심하며 ‘정치적 살인’을 주장했다. 급기야 뉴욕타임스, 로이터, 가디언 등 미국과 유럽의 18개 언론사가 공동으로 ‘다프네 프로젝트’를 결성해 사건의 배후를 캐고 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사건 발생 후 근 1년이 지나가지만 여전히 사진 아래 타오르는 수 많은 촛불처럼 몰타 국민의 심경을 대변한 이 글귀가 결국은 갈리치아 기자의 죽음 및 몰타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 힘이 될 것이다.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의 힘은 갈리치아 기자와 반대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6년 미국의 작은 지방신문 새너제이 머큐리의 개리 웹 기자는 우연히 받은 제보를 끈질기게 취재해 엄청난 특종을 터뜨렸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1980년대 중반 중남미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마약을 몰래 들여와 엄연히 미국 국민인 흑인들에게 판 뒤, 이 돈으로 니카라과의 좌익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한 우익 반군을 지원했다는 폭로였다. 즉 정부 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마약 장사를 했다는 믿기 힘든 보도였다.

CIA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유력 언론사들에게 해당 기사를 공격하는 자료들을 만들어 돌렸다. 아울러 웹 기자의 스캔들 등 사생활을 뒷조사한 내용까지 흘렸다. LA 타임스 등 낙종에 당황한 다른 유력 언론사들은 CIA에 동조하며 기사의 진실보다 웹 기자 개인과 기사를 물고 늘어졌다. 애써 그와 그의 기사를 의심하며 세상으로부터 지우려 한 것이다.

결국 웹 기자는 해당 기사로 그 해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신문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그는 혼자서 CIA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다가 2004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고 나서 CIA는 그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행동에 나서는 것 못지 않은 큰 힘을 발휘한다. 4년 만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배상 판결이 나온 것도 수 많은 기억과 외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들과 징병ㆍ징용 피해자들, 67년 전 거창 양민학살사건, 55년 전 대한청소년개척단 사건 등 억울한 피해자들을 낳은 사건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반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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