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오가고 있다. 정부는 물론, 시장과 기업에서도 관심이 많다. 기업사회책임(CSR), 지속가능경영, 공유가치창출(CSV), 사회적 기업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SK처럼 ‘이윤 극대화’ 대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주요 목표로 삼는 대기업도 있다.
사회적 가치란 사회문제를 해결해서 생기는 가치를 뜻한다. 전통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시장은 사회문제 해결에 무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며, 이른바 시장실패의 결과가 사회문제인 경우도 많다.
과연 시장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시장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효율적인 자원배분 기제로 알려져 있다. 흔히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라 말하지만 실제는 시장가격이라는 ‘보이는 손’ 덕분이다. 가격은 거래 당사자 사이에 교환되는 가치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는다. 사람들은 가격이라는 정보를 보고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문제는 경제활동을 통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과 편익이 시장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럴 경우, 사회적 가치 창출에 관한 자원 배분이 왜곡되면서 시장실패가 만연한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시장과 사회적 가치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전통적인 수단이 정부의 시장개입이다. 사회적 비용은 규제와 조세를 통해 줄이고, 사회적 편익은 지원정책과 보조금을 통해 장려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개의 사회문제는 난마처럼 얽힌 데다, 정부의 관료주의와 전문성 부족 등으로 정부 실패가 잦다. 오히려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개입으로 사회문제가 악화한 사례도 적지 않다.
다른 해법으론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해 상품과 자본시장의 가격에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시장이 스스로 사회적 가치의 선택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이 시장에서 보상받기 쉬워져 관련 산업과 비즈니스가 활발해진다. 사회적 가치도 시장을 통해 극대화될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에서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ㆍ평가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세계 금융자산의 30%를 차지하는 사회책임투자(SRI)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제 투자자들은 기업의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성과도 주요 투자 기준으로 삼는다. 기업활동의 ESG 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하려는 시도도 있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별로 계정을 만들고, 각각의 편익과 비용을 측정해 합산하면 전체 사회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회적 가치를 시장가격에 반영하기가 쉬워진다. 서로 다른 가치를 비교할 수도 있다. 그만큼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해진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최근 주목받는 사회적 자본 시장 활성화에도 필수적이다. 국가 차원에서 사회적가치평가원(가칭) 설립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평가원은 사회적 가치 측정의 표준을 정립하고, 사회성과 데이터를 축적해 이해관계자에게 유용한 사회성과 정보를 제공한다. 관련 생태계 육성도 필수적이다. 전문조직과 전문가, 인증ㆍ교육ㆍ컨설팅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 측정은 일종의 ‘사회적 회계’다. 기업 회계기준이 정립되는데 10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마찬가지다.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회계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이 지속해야 한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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