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2일) 막 내린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특별전은 ‘3X3 아이즈 : 호러 거장, 3인의 시선’이었다.
지난 2015년 타계한 웨스 크레이븐 그리고 2년뒤 나란히 세상을 떠난 조지 A 로메로와 토브 후퍼 등 호러 거장 3인의 초기작들과 대표작들을 한 데 모은 특별전으로, 중고교 시절 이들의 영화에 빠져살던 오래전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올랐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을지로 스카라 극장과 명동 코리아 극장 등에서 주로 봤었다.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당시는 누구의 어떤 영화가 더 잔인하고 무서운가 혹은 무섭고 야한가만을 따지고 평가하는데 애썼던 것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영화에 슬쩍슬쩍 녹여내는 ‘함의’가 읽히기 시작했다. 일례로 크레이븐 감독에게 ‘제2의 전성기’를 제공한 ‘스크림’에서 주인공 시드니(니브 캠벨)가 성경험을 치른 뒤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설정은 자신이 만들었던 예전 공포영화들까지 포함해 일반적인 공포영화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다뤄왔던 편견을 재치있게 비틀고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것이었다. 마치 존 포드 감독이 웨스턴(서부극) 장르의 전성기를 스스로 열고(‘역마차’) 닫았던(‘수색자’) 것마냥 말이다.
지금은 ‘좀비 시리즈’의 할아버지 정도로만 회자되지만 알고 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고 은유했던 로메로 감독과 베트남전 패전 이후 타자(他者)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 및 가족신화를 비판하고 형상화했던 후퍼 감독 역시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싸구려로 천대받아온 호러 장르에서 고집스럽게 때로는 영리하게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인물들이었다.
호러 거장 3인의 특별전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우리 공포영화, ‘K호러’의 현 주소가 궁금해졌다.
제임스 완 감독이란 걸출한 ‘신동’과 블룸하우스로 대표되는 ‘명가’의 등장으로 할리우드 호러는 쉼 없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K호러는 수 년째 잠잠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2016년 ‘곡성’과 올 봄 ‘곤지암’ 의 흥행 성공으로 K호러에 내려졌던 ‘사망신고’가 허위였다는 게 증명됐으나, 여전히 빈사 상태인 건 확실해 보인다.
K호러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배경에는 우선 자본의 외면이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수익이 곧 지상 최대의 선(善)인 상업영화에서 돈 안되는 K호러에 메이저 자본이 따뜻한 눈길을 주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진짜 아쉬운 건 우리 영화인들의 도전 여부다. 앞서 언급했던 호러 거장 3인도 평생을 자본과 치열하게 싸우고 타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미 할리우드 변방으로 밀려났던 후퍼 감독은 말년에 아랍에미리트로 가면서까지 호러 연출을 멈추지 않았다.
호러는 출생부터가 비주류 장르다. 123년 영화 역사상 단 한 번도 비주류 신세를 벗어난 적이 없다. 메이저 자본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비주류 장르에서 살아남으려면 독창적 아이디어 발굴과 끈질긴 도전 정신만이 해법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영화인들에게서 그 같은 모습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이 고만고만한 아이템에만 목 매달고 있을 뿐, 결기로 무장하고 끊임없이 호러에 달려드는 영화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일부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내년이면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다. 1919년 ‘의리적 구토’가 상영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이쯤 되면 우리도 호러 거장 혹은 호러 장인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K호러를 아끼고 사랑하는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 드리는 말씀이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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