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 공장 세운 佛시멘트기업
IS에 뒷돈 주며 공장 가동 등 거래
佛정보당국은 알고도 침묵 일관
美 수출무기 50%가 중동으로 향해
유럽의회 '무기수출 금지' 결의에도
伊ㆍ佛 등 "문제될 게 없다" 입장
지난 10일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시리아의 라파즈: 다에쉬(Daeshㆍ‘극단주의 단체’라는 뜻으로 이슬람국가의 아랍식 표현)와의 협상, 정보기관은 알고 있었다”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게재했다. 2012~2014년 프랑스 시멘트 기업 ‘라파즈(Lafarge)’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간에 은밀히 행해지던 거래를 프랑스 정보당국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메모를 폭로한 보도였다.
라파즈의 시리아 공장은 2010년 시리아 북부 잘라비야 지역에 들어섰다. ‘IS 수도’로 유명해진 락까와의 거리는 불과 87㎞정도인 곳이다. 이듬해 3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으나, 라파즈는 철수하는 대신 IS나 알 누스라(시리아 내 알카에다 연계 조직) 등에 뒷돈을 주며 공장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석유와 화산재 등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도 이들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IS가 무서운 속도로 점령 지역을 확장해 가던 2014년 6월에도 라파즈는 외국인 직원들만 조용히 철수시켰다. 석 달 후인 9월19일, IS가 공장지대까지 점령해 들어올 때 현지에 남은 직원들은 결국 스스로 막판 탈출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파즈와 IS의 거래 의혹은 2016년 2월18일 시리아 언론 ‘자만 알 와슬’이 최초로 제기했다. 같은 해 6월 21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이를 인용 보도했고, 다른 프랑스 언론들의 보도도 이어졌다. 그리고 5개월 후인 2016년 11월, 프랑스 비정부기구(NGO)인 ‘셰르파(SHERPA)’와 비영리 법률단체 ‘유럽헌법인권센터(ECCHR)’, 라파즈 전직 직원 11명은 라파즈를 반(反)인도주의 범죄와 전쟁범죄 공모 혐의로 프랑스 법원에 고발했다. 지난해 6월부터 수사를 본격화한 프랑스 사법당국은 마침내 지난달 28일 라파즈를 테러조직 자금지원, 반인도주의 범죄 공모 등 혐의로 기소했다.
리베라시옹이 폭로한 군 정보국(DRM)과 국내안보정보국(DGSE)의 메모에는 모두 ‘국방기밀’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2014년 12월18일자 메모를 보자. 여기에는 “라파즈 공장의 (폐쇄 시) 가치는 재고 시멘트까지 고려하면 2,500만달러(283억여원) 상당이다. 테러리스트 그룹(IS)은 시멘트 사업을 원하고 공장도 재가동되길 바라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 “12월 22일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라파즈의) 터키 업무 담당자와 IS 대표가 이 프로젝트(거래)를 부활시키기 위해 다시 만날 예정”이라는 내용도 있다. 해당 만남과 관련, 12월30일자 메모는 ‘거래 가격’을 총 1,150만달러(130억여원)라고 언급하고 있다. IS가 공장 인수까지 고려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협상에는 ‘암로 탈레브’라는 시리아계 캐나다인과 ‘아부 로끄만’이라는 IS간부가 마주 앉은 것으로 보인다. 락까 출신 해외 망명 시민기자들이 운영하는 시리아 내 반(反) IS 단체 ‘락까는 서서히 학살되고 있다(RBSS)’는 아부 로끄만에 대해 “알레포대학 법학도 출신으로 IS 장악지역에서 벌어진 모든 ‘참수’를 담당한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리베라시옹의 폭로가 던진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국 기업이 희대의 테러 조직과 거래 중이라는 사실을 정보당국이 인지하고도 침묵했음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수년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중동 분쟁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인권 침해와 살상에 눈을 감고 오로지 ‘돈이 되는’ 사업을 좇는 강대국 정부 및 기업의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무기 거래는 전쟁 특수를 노리는 대표적인 행위다. 전 세계의 무기 거래 실태를 조사해 온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센터(SIPRI)가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는 “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은 세계의 무기 수입을, 미국은 무기 수출을 각각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무기수출량의 34%를 차지하는 1위 국가다. 2위 러시아보다도 58%나 많은 수준이다. 그렇게 수출된 미국산 무기의 절반가량(49%)이 중동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10년간 중동의 무기 수입량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게 SIPRI의 분석이다.
이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분쟁에 휩싸여 있는 시리아, 예멘의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7월 ‘발칸탐사보도 네트워크(BIRN)’와 ‘조직범죄ㆍ부패 보도 프로젝트(OCCPR)’가 공동 발표한 ‘죽음을 부른다: 중동으로 연결된 12억유로짜리 무기 수송로’ 보고서는 유럽과 중동, 미국 등 3자 간의 무기거래 역학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랍의 봄 이듬해인 2012년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등 중부 및 동부 유럽 8개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등 중동 3개국과 터키에 수출한 무기는 최소 12억유로(1조 5,810억여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중동 3개국과 터키가 모두 시리아 무장 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사우디는 8억2,900만유로(1조934억여원) 상당의 무기를 사들인 최대 수입국이다.
2012년 전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중동 사이의 무기 거래는 거의 전무했다. 보고서는 “발칸과 유럽 국가들이 난민 루트를 폐쇄하는 한편, 수십억유로의 무기 수송로는 활짝 열어 놨다”고 꼬집었다. “항공기와 선박에 오른 무기들이 중동으로 술술 흘러 들어가는 이 거래는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라고도 했다. 물론 미국 역시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특수작전사령부(SOCOM)는 ‘퍼플 쇼벨’이나 ‘시에라포’ 등과 같은 중소 방위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동유럽 무기를 사들인 뒤 중동의 전쟁 지역, 특히 시리아 무장반군 진영으로 보내 왔다.
현재 시리아 반군 진영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는 없다. 그럼에도 무기 수입국(중동 3개국과 터키)이 사들인 무기를 제3자에게 다시 전달하는 것과 관련, 그 최종 수령자가 인권 침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무장반군이라는 사실은 ‘무기거래에 대한 국제규약(ATT)’ 위반으로 볼 여지가 있다. 문제의 거래에서 무기를 수출한 8개국은 모두 ATT 비준국가다. 게다가 유럽연합(EU)은 2008년 ‘무기수출 통제에 관한 공동입장’을 채택한 바 있다. 여기서도 ‘재래식 무기의 불법적 전이’는 금지돼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회는 지난해 11월30일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 사태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사우디로의 무기 수출 금지’ 항목을 포함시켰다. 예멘 전쟁이 유럽 국가들의 대(對) 사우디 무기 수출에 명백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예컨대 벨기에와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자국 무기의 사우디 수출과 관련, 라이선스 제한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사우디가 국제적 무기금수 조치를 당하는 국가가 아닌 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프랑스도 사우디 등에 대한 무기 수출이 국내법으로 충분히 모니터링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인권단체들은 정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지난 3월20일 ‘엠네스티 프랑스’와 ‘고문반대기독연합(ACAT)’은 프랑스 로펌 ‘앙실 아보까’에 의뢰한 법률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사우디와 UAE에 대한 프랑스의 무기 수출은 투명성이 부족하고, 국제인도주의법 및 ATT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사우디로의 무기 수출을 금지한 유럽의회 결의안에도 불구, 이 문제는 개별 회원국과 인권단체 간 법률공방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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