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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나는 삶에 졌다"... 늙은 아버지의 혼잣말로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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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나는 삶에 졌다"... 늙은 아버지의 혼잣말로 쓴 소설

입력
2018.07.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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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야스미나 레자. 희곡 '대학살의 신'과 '장례식 후의 대화' '아트' 등으로 토니상, 몰리에르상, 세자르상 등을 받았다. 뮤진트리 제공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야스미나 레자. 희곡 '대학살의 신'과 '장례식 후의 대화' '아트' 등으로 토니상, 몰리에르상, 세자르상 등을 받았다. 뮤진트리 제공

비탄

야스미나 레자 지음∙김남주 옮김

뮤진트리 발행∙188쪽∙1만3,000원

소설은 170쪽에 이르는 긴 혼잣말이다. 프랑스의 이름난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59)의 ‘비탄’. 레자의 소설은 희곡을 닮아 있어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무대의 막이 눈앞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다.

지치지 않고 말하는 건 70대 노인 사뮈엘, 듣는 건 36세의 아들이다. 듣긴 하는 건지, 아들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는다. 둘은 여느 아버지와 아들처럼 평생 불화했다. 하면 된다는 말을 붙잡고 산 사뮈엘은 무위, 방랑에서 행복을 찾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 “사회의 패자”라고 아들을 몰아붙이다가도 “여자들과 섹스는 좀 하고 다니냐”고 ‘진심으로’ 걱정한다. 이처럼 한두 가지 무심한 묘사, 대화로 인물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게 레자 소설의 미덕이다.

사뮈엘은 큰 목소리를 권위로 여기는 가부장의 전형이다. ‘자기 아이의 죽음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고 적힌 전단지를 준 사람에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역정 내는 꼰대다. 한 시간 입씨름해 잡역부 노임을 찔끔 깎는 자린고비다. 아버지가 밉다가도 돌아 누운 뒷모습을 보면 가여워지는 마음은 만국공통일까. 레자는 나이 들어 껍데기가 된 사뮈엘을 연민한다. 그는 부인에겐 종종 맞고, 딸에겐 조롱당한다. 그의 왕국은 집 앞 작은 정원으로 쪼그라든다. 그는 정원 가꾸기에 매달리는 것으로 마지막 영토를 지키려 한다.

참는 것이라곤 모르고 산 사뮈엘은 허물어지는 육체를 참는 것마저 받아들인다. “병이 삶을 대신하지. 그런 세계 속에서는 약속의 땅도, 델 듯한 뜨거움도, 승리나 패배도 없어.” 그리고 결국 아들 앞에 배를 드러내 보인다. “매일같이 나는 세상이 나를 점점 더 강하게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알다시피 나는 이 조여듦에 맞서 끊임없이 싸웠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것은 시작부터 진 싸움이었어. (…) ‘행복이란 우리 둘 다 예전처럼 웃는 거예요’라고 (네가)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말그대로 ‘극적’이다. 사뮈엘에 얼마나 이입했는지에 따라 우스운 결말로도, 슬픈 결말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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