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
야스미나 레자 지음∙김남주 옮김
뮤진트리 발행∙188쪽∙1만3,000원
소설은 170쪽에 이르는 긴 혼잣말이다. 프랑스의 이름난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59)의 ‘비탄’. 레자의 소설은 희곡을 닮아 있어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무대의 막이 눈앞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다.
지치지 않고 말하는 건 70대 노인 사뮈엘, 듣는 건 36세의 아들이다. 듣긴 하는 건지, 아들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는다. 둘은 여느 아버지와 아들처럼 평생 불화했다. 하면 된다는 말을 붙잡고 산 사뮈엘은 무위, 방랑에서 행복을 찾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 “사회의 패자”라고 아들을 몰아붙이다가도 “여자들과 섹스는 좀 하고 다니냐”고 ‘진심으로’ 걱정한다. 이처럼 한두 가지 무심한 묘사, 대화로 인물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게 레자 소설의 미덕이다.
사뮈엘은 큰 목소리를 권위로 여기는 가부장의 전형이다. ‘자기 아이의 죽음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고 적힌 전단지를 준 사람에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역정 내는 꼰대다. 한 시간 입씨름해 잡역부 노임을 찔끔 깎는 자린고비다. 아버지가 밉다가도 돌아 누운 뒷모습을 보면 가여워지는 마음은 만국공통일까. 레자는 나이 들어 껍데기가 된 사뮈엘을 연민한다. 그는 부인에겐 종종 맞고, 딸에겐 조롱당한다. 그의 왕국은 집 앞 작은 정원으로 쪼그라든다. 그는 정원 가꾸기에 매달리는 것으로 마지막 영토를 지키려 한다.
참는 것이라곤 모르고 산 사뮈엘은 허물어지는 육체를 참는 것마저 받아들인다. “병이 삶을 대신하지. 그런 세계 속에서는 약속의 땅도, 델 듯한 뜨거움도, 승리나 패배도 없어.” 그리고 결국 아들 앞에 배를 드러내 보인다. “매일같이 나는 세상이 나를 점점 더 강하게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알다시피 나는 이 조여듦에 맞서 끊임없이 싸웠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것은 시작부터 진 싸움이었어. (…) ‘행복이란 우리 둘 다 예전처럼 웃는 거예요’라고 (네가)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말그대로 ‘극적’이다. 사뮈엘에 얼마나 이입했는지에 따라 우스운 결말로도, 슬픈 결말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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