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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에 맞서려다 똑같이 괴물이 된 ‘워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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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에 맞서려다 똑같이 괴물이 된 ‘워마드’

입력
2018.07.20 04:40
수정
2018.07.20 08:37
1면
0 0

 #1 

 온라인서 남성혐오 극단적 표출 

 게시판에 목 겨눈 식칼ㆍ숨진 태아 등 

 섬뜩한 사진과 과격한 위협 글 넘쳐 

 일부 여성들, 여성혐오에 도 넘은 대응 

 #2 

 ‘메르스 오보’에 미러링 시작 

 ‘메갈리아’ 활동하다 내부 갈등 

 일부 회원들 나와 ‘워마드’ 개설 

 #3 

 “현실서 남성은 두려움의 대상 

 워마드 통해 겁주기 놀이할 뿐 

 권력관계 뒤집힐 때 쾌감 느껴” 

 운영자ㆍ회원 3만명 실체는 불분명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노. 바깥에 놔두면 유기견이 처먹을라나 모르겠노 낄낄’

‘워마드(Womad)’ 사이트 게시판에 지난 13일 ‘낙태인증’이라는 제목과 함께 남아로 추정되는 숨진 태아 사진이 올라왔다. 잔인하게 훼손된 모습. 글 아래로 ‘오늘 저녁은 낙태 비빔밥이다’ ‘젓갈 담가 먹고 싶다’ ‘유충낙태는 에티켓’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실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이 사진에 온갖 말들이 달려들었다. 유명 소설가는 경찰을 향해 당장 수사에 착수하라고 했고, 한 시민단체는 워마드와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을 경찰에 고발했다. 언론 역시 실시간으로 이들을 기사화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사진은 구글에서 ‘Abortion(낙태)’을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미지로 밝혀졌다. 실제 낙태 인증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진짜 여부와 상관없이, 충격적인 이미지와 문구, 과격한 호응들이 쉽사리 이해되기 힘든 건 분명했다.

같은 날 워마드에 ‘날이 너무 덥노, 그러다 보니까’라는 제목의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시내버스 안에서 자신 주변에 앉은 남성들의 뒷목이나 옆구리를 향해 식칼을 겨누는 여러 장의 사진이 첨부됐다. 한 남성 뒷자리에 앉아서는 목 가까이 칼을 갖다 대는 사진도 있다. 사진과 함께 글쓴이는 ‘짜증나서 실수로 한남(워마드에서 '한국 남자'를 이르는 말)을 찌르기도 한다’면서 ‘근데 한남 찌르면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했다. 이어 ‘여름에 교통수단 이용하지 마라. 한남들아 알겠노? 확 찔러버린다’라며 불특정 남성을 위협하는 말을 남겼다.

워마드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성 혐오에 기반한 게시물이 올라온다. 천주교에서 예수 몸의 상징으로 여기는 ‘성체’를 훼손하는가 하면, 경기 고양시 한 아파트 외경 사진과 함께 ‘여기 사는 남자아이 한 명을 납치하겠다’는 섬뜩한 범죄 예고 글이 게시된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사는 유치원 남자아이를 유인한 후 약물 주사를 놓아 살해한 뒤 바다에 유기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끼리끼리 약속된 언어로만 대화하고, 상식의 세계에서 납득되지 않는 주장을 펼치고, 끔찍한 이미지들로 남성을 조롱하거나 협박하고... 과잉 혐오와 과잉 호응과 과잉 해석들 사이에서 ‘워마드’는 흉흉한 소문이 되어 한국사회를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글대는, 흘러 넘치는 에너지로 꿈틀대는 ‘웜’(워마드 이용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있다.

워마드는 한때, 가끔은 지금도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는 글과 사진들이 등장하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거울쌍에 불과할까? 웜은 정체불명의, 느닷없이 튀어나온 해석 불가한 사이코들일까? 그러나 분명 그들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여동생이기도, 학교 선배이기도, 직장 동료이기도 하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웜들. 그래서 그들에게 직접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워마드 탄생과 논란 일지_신동준 기자
워마드 탄생과 논란 일지_신동준 기자

성씨조차 밝히길 거부한 A(23)씨는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보통의’ 대학생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딸’이자 ‘여동생’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워마드는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가지는 ‘고취감’을 처음 느끼게 해 준 곳’이다. 공부를 잘해야, 스펙이 훌륭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만 가지고도 열패감이 아닌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워마드의 핵심 정서라고 그는 설명했다.

“명절 때마다 사촌 여동생 인증사진이 올라오던 일베는요? 언제 한번 제대로 수사나 했나요? 그러니까 웃긴 거에요. 우리가 진짜 길 가던 남자를 찌르기라도 했나요? 성폭행이라도 했나요? 그래서, 남자들이 길 가다 마주치는 인기척에 혹시 ‘여자일까 봐’ 흠칫 놀라기라도 하냐고요. 아무리 악랄한 말을 해도,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절대 다수로 ‘피해자’이고 절대 다수로 ‘약자’에요.”

A씨에게 ‘도대체 웜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냐’는 질문은 조소의 대상에 불과하다. ‘워마드에 흘러 넘치는 혐오의 정서가 불편하거나 께름칙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어이없다는 반응이 돌아올 뿐이다.

“여긴 놀이터(실제로 워마드 게시판 카테고리 중 하나도 ‘xx놀이터’다)에요. 웃어 넘어가야 할 놀이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려 드는 것 자체가 웃긴 거죠. 우리는 지금 남성을 우습게 생각하고 조롱하는 놀이를 하는 거에요. 현실에서는 늘 남성이 겁내야 할 대상이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지금 ‘겁주기 놀이’에요. 우리는 왜 누군가에게 위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나요? 권력관계가 뒤집어졌을 때 나오는 쾌감, 그 쾌감 자체가 워마드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워마드는 그냥 놀이의 장이다.

다만 A씨는 실제 주변사람 누구에게도 자신이 웜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있다. 워마드에서의 일탈이 일상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 묻는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A씨는 대신 “어차피 사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 아는데, 굳이 그 적대와 맞서 싸우면서 현실의 나를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A씨와 달리 워마드의 ‘남성혐오’를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웜도 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고교생 B(18)씨는 최근 석 달간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있었던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모두 참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랟펨(래디컬 페미니즘)’ 계정을 통해 워마드로 흘러 들어왔다는 그에게 워마드의 출발이나 역사는 중요치 않다. 대신 워마드에서 배운 ‘싸움의 기술’을 일상의 폭력과 맞서는 데 사용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페미니즘 문구를 SNS에 내걸면,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메갈년’이냐고 대놓고 물어보고 조롱해요. 걔들한테 쫄지 않고 맞서려면 깡이 필요해요. 그 깡을 워마드에서 배우는 거에요. ‘김치년’이라고 욕하면 저도 ‘한남충’이라고 맞받아쳐 줄 수 있어야 되잖아요. 학교만큼 여성혐오가 만연한 곳도 없는데 아무도 우리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잖아요. 당장 제대로 된 페미니즘 교육도 안 해주는 곳이 학교죠. 아무도 안 가르쳐주면 우리 스스로 배우고 깨우쳐야죠.” 그에게 워마드는 또 다른 학교다.

B씨처럼 워마드의 이러한 ‘효능감’이 실제 현실에서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워마드 게시판 중 하나인 ‘프로젝트’ 게시판에는 갖가지 제안이 올라온다. ‘한남 신상 털기’나 ‘이슬람성원 앞에서 돼지고기 파티’ 등 다분히 비상식적인 프로젝트도 있지만 “TV 뉴스에서 ‘나이 든’ 남성과 ‘젊은’ 여성이 나란히 앉는 구도를 바꾸기 위해 항의 전화를 하자” 거나 “남성들로 점철된 지방선거 투표용지에 항의하는 문구를 적고 나오자”는 여성운동의 모습과 겹쳐볼 수 있는 제안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최근 탈코르셋(외모의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 운동 역시 출발은 워마드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왜 이곳으로 모여들었을까? 워마드의 탄생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우선 2015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다수의 남성 네티즌들은 일베를 비롯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을 혐오하는 표현을 사용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김치녀가 대표적이다. 김치녀는 일부 속물적인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되다가, 어느 순간 한국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뜻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는 이를 뒷받침해줄 난데없는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바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다. 메르스는 전염성이 강한 급성 호흡기질환으로 2015년 5월 20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68세 남성이 첫 확진자로 확인된 이후 186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한창 국내에서 메르스가 퍼지고 있을 때 ‘홍콩에서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여성 두 명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남성들은 기다렸다는 듯 ‘김치녀 때문에 한국에 메르스 퍼진다’라며 한국 여성들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보도가 홍콩 보건당국의 오해로 빚어진 오보로 밝혀지면서 여성들은 격분했다.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인 ‘메르스 갤러리’에서 반격이 시작됐다. 메르스 첫 감염자가 남성인 점을 들어, ‘늙었음 곱게 뒤질 일이지 병원 4곳 들러서 여러 사람 골로 보내는 김치남’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후 디시인사이드 내 여성 회원들이 메르스 갤러리로 몰려들어 남성들을 김치남으로 비하하는 동시에 지금껏 당했던 혐오를 성토하는 일이 벌어졌다. 산발돼 있던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심이 ‘메르스갤러리’라는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메르스 갤러리 회원들은 더 확장성이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를 만들어 SNS로 주무대를 옮겼다. 메갈리아는 메르스 갤러리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합성어다. 소설 ‘이갈리아 딸들’은 통상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뀐 세계를 설정해 쓴 소설로 ‘미러링(의도적 모방)’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후 메갈리아는 성차별적인 광고, 잡지,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비판하고 몰래카메라로 피해를 본 여성들을 위해 모금을 진행하는 등 여성인권을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갔다.

2015년 12월 성소수자 인권 문제로 메갈리아는 내부 갈등을 겪게 된다. 일부 회원이 게이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사진과 개인정보를 온라인상에 공개하는 게이 아웃팅(성소수자임을 강제로 폭로하는 행위)을 한 게 발단이다. 메갈리아 운영진은 “성소수자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며 이들의 행위를 제한했지만, 일부 회원은 “생물학적 남성은 모두 배척 대상”이라며 메갈리아를 탈퇴했다. 이후 이들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여자(woman)와 유목민(nomad)의 합성어인 ‘워마드’ 카페를 개설했고, 2017년 2월 독립된 사이트를 구축했다. 2015년 메르스 갤러리로 응축된 ‘반(反)남성 에너지’ 중 가장 과격한 에너지가 떨어져 나오는 순간, 워마드가 탄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캡처

워마드의 극단적 과격성이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지만, 실체는 불분명하다. 3만명 정도가 가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고, 운영자 정체를 두고도 말이 무성하다. 최초로 워마드를 만든 운영자가 명문대 출신 젊은 여성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는 정보다.

지금도 워마드라는 공간에서는 남성혐오라는 목적 하에 실제 일반인들 대상 범죄행위가 벌어진다. 최근 홍익대 회화 수업에서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을 몰래 찍어 사진을 공유한 뒤 조롱했던 사건이 대표적. 워마드는 여성주의를 앞세워 약자 혐오도 정당화한다. 성적 지향과 나이, 출신지역, 장애 여부 등은 워마드가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남성’ 성별을 가졌다면 고 백남기 농민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노동자도, 비극적으로 사망한 연예인도 희화화 대상으로 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혐오에 대응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미러링’은 무조건적 옹호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논란을 불러 일으킨 몇몇 웜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워마드 사이트 폐쇄를 촉구하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도 워마드에는 끊임없는 조롱과 혐오가 판을 치고 있다.

워마드를 두고 우리는 묻는다. 과연 미러링의 일환이라면 ‘성희롱’도 ‘살인 예고’도 ‘약자 혐오’도 모두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워마드는, 괴물을 흉내 내며 괴물이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주려다, 결국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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