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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점령지의 역설

입력
2018.07.19 18:48
수정
2018.07.20 15:4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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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구에 있는 미군부대는 일제강점기에 무기를 만들던 일본 육군 조병창이 있던 곳이다. 해방 후 일본군이 물러가자 미군 제24군수지원사령부가 같은 자리에 주둔하며 주한미군의 주요 보급창 역할을 했다. 1973년, 보급창의 역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후 미군부대의 일부가 반환됐지만, 지금도 44만㎡ 면적이 미군부대로 남아 있다. 남은 군부대도 곧 이전할 계획이다. 미군부대 안에는 30여 채의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어 인천의 시민사회와 인천시는 그 건물을 활용한, 부평 최대의 공원을 꿈꾸고 있다.

서울 용산에는 러일전쟁을 전후로 일본군이 주둔했다. 해방 후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를 미군이 넘겨받았다. 2003년, 한국 정부와 미군은 용산기지 이전을 합의했고, 내년 말 평택 이전이 완료되면 서울 시민은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공원을 갖게 될 것이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부산 연지동 일대에 경마장으로 사용됐던 땅은 일본 군사훈련소가 됐다. 해방 후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했고, 한국전쟁 직후 주한미군 지원사령부가 들어오면서 초대 사령관의 고향 이름을 따 하얄리아 부대로 불렸다. 2006년, 하얄리아 부대는 문을 닫았고, 2014년에 부산시민공원이 됐다. 부산 시민은 도심 한복판에 대형 공원을 갖게 됐다.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시민공원이 생기거나, 조성을 앞두고 있거나, 공원을 꿈꿀 수 있는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점령의 역사가 있다. 세 공간 모두 100년 안팎의 세월동안 외국군의 주둔지로 도시의 주요 공간을 차지했다. 도시 안에 있는 땅이면서도 시민들이 갈 수 없는 곳, 그곳은 도시의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 장벽은 시민들의 접근을 막음과 동시에 도시 공간을 둘러싼 욕망도 가로막았다. 군부대는 도심 속 개발제한구역이 됐다. 주변이 고층 건물로 가득 찰 동안, 군부대는 넓은 오픈 스페이스를 고스란히 도심에 남겨 주었다. 2000년대 들어 도심의 군부대는 이전하거나 이전 계획을 세웠다. 그곳에 시민의 공간이 생기고 있다.

시민의 접근이 오랫동안 차단된 공간은 군부대뿐만 아니다. 인천은 항구도시로 바다를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의 해안선은 군사시설과 항만시설로 시민들의 접근이 수십 년 동안 금지됐다. 갑문식 독으로 유명한 인천 내항은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큰 배들의 독 출입이 어려워지자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항구 기능을 북항과 신항 등으로 이전하고 시내와 맞닿아있는 1부두와 8부두부터 재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제 곧 바다가 시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최근 인천에서는 내항 재개발을 둘러싼 설전이 있었다. 내항 재개발을 추진하는 공공기관이 약 5,000세대의 아파트 건설계획을 만지작거린다는 내용이 한 지역 신문사를 통해 보도됐다. 인천 시민사회는 공공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고, 땅 주인인 인천항만공사는 “공공성을 최우선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시민들의 참여로 내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설전을 통해 공공기관이든, 시민사회든 수십 년 만에 시민에게 개방되는 내항의 공공적 개발을 원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 됐다. 이제 건강한 논의과정과 실행이 남았다.

시민 접근과 개발이 제한됐던 공간이 속속 시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군부대, 항구, 대형 공장, 정수장, 쓰레기 매립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 땅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 세대의 오랜 접근금지의 대가로 얻게 된 도심 속 넓은 공간. 그 덕분에 우리 세대는 또 다른 도심 속 삶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다음 세대에 넘겨줘야 할까? 최소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럴거면 그냥 막아 두지 그랬냐”는 원망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 도시의 생명 현상과 삶을 관찰한 ‘시티 그리너리’의 저자 최성용씨가 ‘삶과 문화’ 새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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