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생제도 무너진 상황에서
기업 자율성 제약은 그대로
간부들, 책임전가 익숙해져”
# “평안북도 공장 시찰 목적은
자립적 현대화 독려 가능성”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간부 기강 잡기에 나섰지만 낮은 북한 국영 기업 생산성의 원인은 기업 관리 제도의 구조적 난맥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왔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근 펴낸 보고서 ‘김정은의 평안북도 기업 현지지도의 의미’에서 이달 초 김 위원장이 시찰한 북ㆍ중 접경 신의주의 화학섬유공장과 방직공장 사례를 통해 북한 국영 기업들의 실태를 분석했다.
북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찾아간 신의주 화학섬유공장에서는 마구잡이로 사업이 진행되는가 하면 구성원들이 애써 노력하지 않는 현상이 팽배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배인과 당위원장, 기사장이 서로 밀어내기를 하면서 국가 기업 정책 수행 상황을 정확히 답변하지 못하고 있고, 상부기관인 내각, 화학공업성, 도당위원회 간부들은 이 사정을 알면서도 지도 통제를 방임하는 상태라고 호되게 질책했다.
그러나 간부들의 활동 동력 부재는 무엇보다 북한의 기업 관리 제도인 ‘대안의 사업체계’가 형해화한 탓이라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김일성 주석이 1961년 말 남포시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확립한 이 사업체계의 핵심은 당초 지배인이 갖고 있던 공장 관리 운영 관련 최종 결정 권한과 책임을 공장 당위원회가 보유하도록 한 것이다. 기업 내 사상사업을 지도하는 당위원장, 행정을 맡는 지배인, 기술을 관장하는 기사장 등 3대 행위자가 상호 견제하면서 균형을 맞추도록 체계가 설계돼 있다.
문제는 체계 존속의 전제인 식량 배급 등 후생제도가 무너진 상황에서 기업 운영의 자율성 제약 및 관료화 수준은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공장이 노동자들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정치 논리를 앞세워 노동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억제한 대안 사업체계가 아래로부터 무력해졌고, 생산 필수 요소인 원료와 전력 부족에 만성적으로 시달려 온 공장 간부들은 무력감 속에서 관료주의와 책임 전가에 더 익숙해지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6월 말과 7월 초에 걸쳐 김 위원장이 벌인 평안북도 접경 지역 현지지도의 목적은 중앙 직할 국영 기업의 ‘자립적 현대화’ 독려일 거라고 보고서는 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둘러본 신의주 공장들은 모두 종업원 3,500여명가량 규모의 중앙직할 1급 기업소다.
보고서를 쓴 박 실장은 18일 “국가 기간산업이거나 중앙당ㆍ군대 등 특수기관이 관리해 계획경제 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는 종업원 5,000명 이상의 특급 기업소를 예외로 하면, 종업원 500~1,000명 규모의 2ㆍ3급 기업소들이 이미 독립채산제에 기초한 지방기업으로 변모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2016년 제7차 당 대회 때 제시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의 성과를 구현할 수 있는 단위는 1급 기업소뿐”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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