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간 끌기 전략에 응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시간 제한도, 속도 제한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시간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지 않고 장기전 모드로 대응하겠다는 응수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공화당 하원 의원들과 회동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이 현재 진행중이며 잘 되고 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전히 제재는 이뤄지고 있고 (북한에 억류됐던) 인질들은 되돌아왔다”면서 “지난 9개월 동안 핵실험도, 로켓 발사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것이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CBS 방송 및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과의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지난달 말부터 비핵화 협상에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6 ㆍ12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미간 후속 고위급 협상이 지연되던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노스다코다주에서 열린 유세 연설에서 ‘칠면조 구이론’을 내세워“(비핵화를) 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며 “더 서두를수록 나쁘고, 더 오래할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6~7일 이뤄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세번째 방북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협상 판 자체를 깨기 보다는 아예 협상 속도를 길게 가져가는 쪽으로 굳힌 셈이다.
이 같은 장기전 모드의접근법은 북한 비핵화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는 동시에 비핵화 협상을 지연하는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적 대응 성격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 선거 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북한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북한의 협상술에 말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유엔을 통해 대북 제재 이행의 고삐를 조이고 중국에 대한 압박도 강화하면서 제재를 다시 틀어쥐는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북한이 추가 핵ㆍ미사일 실험에 나서지 않는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유지되면 결국 급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시간 끌기에 ‘우리도 급할 것 없다’는 태도로 응수해 우회적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올 9월 유엔 총회를 이용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나 북한이 희망하는 연내 종전선언 가능성도 당초보다 크게 낮아진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장기전에 대비해 북한 비핵화 성과에 대한 여론의 기대 수준도 낮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해서도 전날 인터뷰에서 “빨리 진행되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복잡한 과정이라는 뜻”이라며 신중해진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최근 인터뷰마다 9개월간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이 중단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하더라도 현 상황 자체가 미국에는 이득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트위터에서도 “서두를 것이 없다.제재는 계속된다”고 강조했다.그는 또 “(비핵화)절차의 끝에 북한을 위한 커다란 혜택과 흥미로운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도 북한과 관련해 (우리를)돕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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