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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열전] “우승 파티? 당장 훈련 나와” 흙신 조련한 삼촌 토니 나달

입력
2018.07.19 04:40
수정
2018.07.19 08:0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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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5세 때부터 테니스 코치

혹독한 투어 생활까지 함께하며

16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 합작

“테니스 즐기지 못하는 이들 생각”

라켓 집어던지는 행위 금지 등

무한 신뢰 바탕으로 엄격한 지도

라파엘 나달 트위터
라파엘 나달 트위터

마이클 조던과 필 잭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알렉스 퍼거슨, 이승엽과 박흥식 코치. 세계적인 스타 뒤에는 항상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특히 재능이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와 그의 코치는 단순 ‘사제지간’을 넘어 더욱 특별한 관계다. 코치는 선수 기량을 바탕으로 훌륭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고, 선수는 이 전략을 경기장에서 실현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흙 신’, ‘왼손 장인’ 등으로 불리는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라파엘 나달(32ㆍ스페인)에게도 각별한 스승이 있다. 그에게 테니스를 처음 가르쳤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육성했으며, 이후 혹독한 투어 생활까지 함께한 코치이자 삼촌인 토니 나달(59)이다.

토니 나달은 테니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긴 코치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조카 라파엘 나달은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프랑스 오픈 10회 우승 등 무려 16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따냈다. 이는 비외른 보리(62ㆍ스웨덴)와 함께 그랜드슬램 12회 우승을 합작한 레나트 베렐린 코치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나달 콤비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올림픽 금메달, 데이비스 컵 등 숱한 화려한 순간을 함께 했다.

혹독한 지도법, 왼손잡이 전향 ‘신의 한수’

토니는 5살 무렵의 라파엘에게 테니스를 가르친 첫 스승이다. 당초 오른손잡이였던 라파엘에게 왼손으로 라켓을 잡고 테니스를 배우도록 했는데, 이는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됐다. 라파엘의 가장 강력한 무기, 즉 포핸드 못지않은 강력한 양손 백핸드 스트로크를 장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파엘은 자서전 ‘라파’(2011년 출간)에서 “나는 어렸을 때 힘이 부족해 포핸드ㆍ백핸드 모두 양손으로 잡고 쳤는데, 토니 삼촌이 그 버릇을 바꾸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치게 됐다”며 회고했다.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엄격한 지도법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토니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테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조카인 라파엘을 특별 대우하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훈련 후 공을 줍거나 코트를 정리하는 것도 라파엘의 몫이었다. 라파엘은 지난해 영국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나는 레슨 후 울면서 집에 오기 일쑤였다”고 고백했다. 라파엘의 어머니는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라파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고 한다. 힘든 훈련을 시시콜콜 엄마에게 이르는 ‘마마보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라파엘이 14살 때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스페인 집으로 돌아온 날 가족들은 축하파티를 열었지만, 토니는 이를 중단시키고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훈련장으로 나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장거리 비행에 지쳐 있던 라파엘은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대들었지만, 다음날 결국 약속한 시간에 코트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짜증이 나고 슬프지만 훌륭한 테니스 선수가 되기 위해선 당장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걸 라파엘도 잘 알고 있었다.

토니는 코트 위에서 예절을 유독 강조하는 지도자이기도 했다. 훈련 도중 게임이 풀리지 않아 라파엘이 라켓을 집어 던지면 토니는 즉시 훈련을 중단했다. 토니는 “라켓을 집어 던지는 짓은 형편상 장비를 갖지 못하거나 테니스를 즐기지 못하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며 라파엘을 꾸짖었다. 일부 스타플레이어들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바닥에 라켓을 내리치곤 한다. 하지만 나달은 이 가르침 때문인지 경기 도중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라켓에 분풀이하지 않는다.

토니는 일부러 거친 코트와 낡은 공 등 거친 환경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토니는 미국 스포츠 매체 블리처 리포트에 “승패를 결정하는 건 오직 선수의 실력뿐, 장비와 환경 부차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라파엘이 네트를 넘다가 넘어져 피를 철철 흘릴 때도, 무더운 여름날 깜빡 잊고 물병을 갖고 오지 않았을 때도 토니는 어린 조카에게 냉정했다. 그렇게 라파엘은 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그런 혹독한 훈련 속에서도 라파엘은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라파엘에게 테니스는 소중했고, 토니의 훈련 방식이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무한 신뢰도 있었다. 라파엘은 자서전에서 “테니스를 즐기지 않았다면 토니 삼촌의 그 엄격함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항상 그를 신뢰했고 나에게 최고의 가르침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라파엘은 또 토니 코치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다이나믹 듀오’라고도 표현했다.

박수칠 때 떠난 토니

세계 최고의 콤비로 군림하던 그들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2015년 라파엘이 윔블던 2라운드에서 당시 랭킹 102위에 불과하던 더스틴 브라운(34ㆍ미국)에게 패하자 라파엘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급부상했다. 전직 세계 랭킹 1위 존 매켄로(59ㆍ독일)는 당시 BBC 라디오에 출연해 “라파엘이 빌어먹을 새 코치를 구해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해 라파엘은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단 한번도 준결승 문턱을 밟지 못 했고 랭킹도 10위로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라파엘은 지난해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거두며 세계 랭킹 1위로 돌아왔고, 토니는 카를로스 모야(42)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떠났다. 라파엘은 US오픈 우승 직후 토니를 향해 “그가 없었다면 나는 테니스를 치지 못 했을 것이다. 항상 뒤에서 지원해주는 삼촌이 있어 기쁘고 든든하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라고 공을 돌렸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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