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조이자
문턱 낮은 전세대출로 옮겨가
대출 잔액 올해 8조원 넘게 폭증
전셋값 하락세에 규제도 약해
금융권 적극적 영업도 한몫
변동금리 많아 가계 건전성 우려
가계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전세가격 하락 등으로 전세 수요가 늘어난 원인도 있지만,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주택대출)을 조이자 가계들이 대출 문턱이 보다 낮은 전세대출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기에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전세대출이 크게 늘면서 가계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KEB하나ㆍ우리ㆍNH농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5조43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보다 1조3,490억원(2.51%),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선 38조2,763억원(43.8%) 늘어난 수치다. 최근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지만 이들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8조원 넘게 늘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잔액이 연내 6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의 각종 대출규제 정책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데는 전세대출이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양도세 중과 시행(4월)을 앞두고 주택대출 수요가 집중됐다는 3월 4조3,000억원 규모였던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전월 대비)은 지난달 5조원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주택대출 잔액 증가폭 또한 4월 2조5,000억원, 5월 2조9,000억원, 지난달 3조2,000억원으로 증가 추세인데, 여기엔 주택대출 통계에 전세대출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전세대출 급등 요인으로는 대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 먼저 꼽힌다. 지난해 8ㆍ2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강화되고 올해도 대출 한도를 한층 낮춘 신(新)DTI(1월)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ㆍ3월)이 도입되며 주택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돈 빌리기 어려워진 가계가 전세대출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투기지역에선 LTV 40%가 적용되는 주택대출과 달리 전세대출은 전세보증금의 80%까지 가능하다. DSR 산정 때도 주택대출과 신용대출은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반영되지만 전세대출은 원금을 뺀 이자만 반영된다. 전세대출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경향도 강화되면서 전세보증금 대비 전세대출금 비율이 70%를 넘는 가계가 3월 기준 전체 대출가구의 42%까지 늘었다.
최근 전셋값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월세 거주자의 전세 전환이 늘어난 점도 전세대출 증가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아파트 전셋값은 1% 하락했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15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조만간 집값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예상 또한 전세 수요를 늘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택대출 취급이 어려워진 금융권도 전세대출 영업에 적극적이다. 은행들은 절차가 간단한 모바일 비대면 전세대출 상품을 확대하고 우대금리 혜택, 이사비 지원 등 각종 이벤트로 전세대출 고객을 늘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 공적 기관을 통해 대출금의 80%를 보증 받을 수 있어 은행 입장에선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세대출이 늘어나면서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세대출의 상당수가 금리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변동금리 상품이란 점이 대표적이다. 시중금리가 오름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연내 2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한국은행도 하반기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터라 변동금리 대출자의 상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변동금리 대출상품의 금리 산정 기준인 코픽스(COFIXㆍ자금조달비용지수)는 10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전셋값 하락이 장기화되는 것도 문제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차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은이 최근 전셋값이 20% 급락하는 상황을 가정해 임대가구 전세보증금 반환 능력을 살폈더니 다섯 가구 중 하나(21.6%)는 추가 대출을 해야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깡통 전세’ 논란에서 보여지듯 전세가격이 하락하면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 부담이 증폭된다”며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전세대출 상환 위험(리스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은도 최근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총량 증가뿐 아니라 보증기관의 잠재 리스크 축적 위험도 고려해 전세대출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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