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낙현 한중연 전문위원
‘무예도보통지’ 속 검법 분석
“일본은 방어 동작이 더 많아”
“적극적 공격법을 집중 수련토록 한 거지요.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 장군이 왜군에게 격파 당한 뒤 개인 무예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겁니다.”
16일 곽낙현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곽 위원은 정조 때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속 검법을 분석한 ‘무예도보통지의 동아시아 도검무예 교류사’를 내놨다. 임진ㆍ병자 양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됐고, 정조 대에 들어 집대성된 것이 바로 ‘무예도보통지’다. 이 책엔 조선의 검법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검법도 함께 담겨 있다. 비교해서 연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곽 위원은 무예도보통지 속 검법 동작들을 일일이 다 분석했다. 의외로 한중일 삼국 가운데 조선의 검법이 가장 공격적이었고 일본의 검법이 방어적이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일본 사무라이의 긴 칼 쓰는 법을 알아 내려 첩자까지 보내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그렇다. 실재 조선의 검법 52개 동작 중 공격적 동작은 33개(63%), 중국은 105개 중 54개(51%), 일본은 164개 동작 가운데 79개(48%)였다. 이 검법 동작들은 그냥 의례적인 게 아니었다. 곽 위원은 “시대가 지나면서 책에 실린 무예가 실전 기술보다는 개인 수련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이 검법은 장교와 사병 모두가 익혔고, 국왕 앞에서 시범도 보이고, 군인들의 승진에도 반영되는 등 그 영향이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공격적 검법이 나오게 된 건 역시 양란의 경험이었다. 곽 위원은 “양란 이전 조선의 주된 군사작전 대상은 북방의 여진족이었고, 기마병에 대항하려면 개인의 무예보다 ‘오위진법’ 같은 단체전술이 유효했다”면서 “조총을 든 왜군에게 이 전술을 쓰다 대패하면서 조선의 군사전술은 대대적인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무예도보통지는 19세기까지 명맥을 이어갔고, 총과 대포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현실세계에서 멀어져갔다.
곽 위원이 세세한 동작 분석까지 들어간 건 ‘무예도보통지’ 속 무예를 재현하는데 기초자료로 삼기 위해서다. 전통 무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무예도보통지’는 주목대상으로 떠올랐으나, 아직까지 모두가 동의하는 완벽한 재연은 없다. 이번 분석을 기초로 통일안을 만들어볼 수 있다.
남북협력 문제도 있다. ‘무예도보통지’ 기록 자체는 지난해 북한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완역본을 내놨다는 점 등을 인정받았다. 이제 남은 건 그 안에 담긴 무예의 재연이다. 곽 위원은 “세계기록유산에는 ‘연속유산’ 개념이 있어서 기록이 유산으로 인정된다면 그 기록의 재연도 유산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서 “남북이 함께 구체적인 동작을 분석해 무예를 재연해내는 데 힘을 합치면 남북 교류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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