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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리(事理)로서의 예(禮)가 필요하다

입력
2018.07.16 19: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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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禮)라고 하면 그저 예법이나 가례(家禮), 제례(祭禮) 등을 떠올리는 데 그친다. 특히 예를 가례로 축소시킨 것은 주희의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서 시작됐고, 주자학이나성리학의 절대적 영향권에 놓인 조선 중기 이후 우리도 예를 가례로 인식해 왔다.

주자학이 ‘사서삼경(四書三經)’만 강조하면서 원래 오경(五經)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예기(禮記)’와 ‘춘추(春秋)’는 배제됐다. 거기에는 본래 공자(孔子)가 말한 예를 치밀하게 왜곡 축소하려 한 주희의 의도가 깔려 있다. 사실 사서(四書)는 송나라 이전에는 없었던 말이며 ‘예기(禮記)’에 한 장(章)으로 포함돼 있던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떼내어 각각 서(書)라 부르고 ‘맹자(孟子)’의 지위를 격상시켜 의도적으로 ‘논어(論語)’와 대등한 지위에 끌어올리면서 사실상 ‘논어’를 격하시킨 개념이 ‘사서’라는 말이다. 따라서 적어도 공자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알려면 가장 먼저 탈피해야 하는 것이 ‘사서삼경’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예기’와 ‘춘추’를 빼버린 것일까? 실마리는 ‘예기’에 있는 예에 대한 정의에서 찾을 수 있다. 공자는 ‘예기’에서 ‘예’란 일을 다스리는 것(治事)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일을 잘 처리한다는 말이다. 사실 공자만큼 일(事)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상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화가 나온다. 공자가 수제자 안연에게 “(인재로) 써 주면 도리를 실천하고 (써 주지 않고) 버리면 그 도리를 잘 간직한 채 조용히 지낼 줄 아는 것을 오직 너하고 나만이 갖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극찬인 셈이다. 이를 지켜보던 용맹스러운 제자 자로가 질투심에 이렇게 물었다. “만일 스승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용맹하니 적어도 군사 문제만은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유도성 질문이다. 그러나 공자는 잘라 말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 하면서 곧 죽게 됐는데도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과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하여서는 두려워하고(臨事而懼)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잘 세워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춘추’ 또한 단순 역사서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거론할 때 엄격했던 그의 역사 서술 자세만 말할 뿐, 정작 공자가 그런 필법을 발휘할 때 썼던 잣대가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리(事理), 즉 일의 이치다. 그래서 ‘춘추좌씨전’을 보면 자연스럽게 예를 아는 사람, 즉 사리를 아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부르고 “예를 모르는 자(不知禮者)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非命橫死)”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한다. 결국 ‘예기’나 ‘춘추’ 모두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희는 이 둘을 의도적으로 경(經)의 목록에서 빼버린 셈이다. 우리가 공리공담(空理空談)에 쉽게 빠져들었고 지금도 크게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역사적 뿌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도 못 채운 것은 한마디로 사리(事理)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그렇게 해서 뒤를 이은 문재인 정부 또한 지난 1년여를 돌아보면 아직은 사리에 밝다고 할 수 없다. 탈원전, 최저임금 등의 문제를 비롯해 북핵 문제에 임하는 이 정부의 언행에서 임사이구(臨事而懼)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몇몇 장관의 무책임한 처신은 점점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이 마음 둘 곳은 물론이고 손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예로 돌아가주기를(復禮) 바란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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