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도 취지는 좋았지만 인건비가 올라가 채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었잖아요. 보험설계사의 고용보험 의무화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악영향에 대해서도 정부가 충분히 고민해줘야 해요.”(5년차 보험설계사 K씨)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추진에 속도를 내면서 당사자인 보험설계사들도 술렁이고 있다. 보험설계사(34만명 추정)는 전체 특고종사자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집단이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게 되면 보험사와 보험설계사의 관계 재정립 등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시행 여부 결정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와 정치권, 보험업계의 찬반 논쟁도 거세지고 있다.
보험설계사들은 어떤 입장일까. 지난해 10월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생명보험 전속설계사 800명 대상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8%가 고용보험 의무화에 반대했고 ‘가입 여부를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45.5%에 달했다. 반면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 최근 발표한 자체 설문조사(보험설계사 147명 대상)에선 10명 중 7명이 의무화에 찬성했다. 보험설계사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16일 본보는 경력 5~7년차 보험설계사 4명을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논쟁의 전제가 되는 “보험설계사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설계사들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O씨는 “누굴 만나 어떻게 영업을 할지 내가 계획을 세우고 자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자영업자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K씨도 “수익 구조가 전적으로 자신의 영업수완에 따라 좌우되는 성과급 형태고 기본급이 없어 사업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반면 P씨와 S씨는 “보험사에 전속 계약을 맺고 있는 설계사는 회사 방침이나 조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사실상 출퇴근 등 의무가 있어 종속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고용보험 가입을 통해 설계사 처우를 개선한다는 정책 취지는 수긍하면서도 제도 시행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했다. S씨는 “모든 설계사가 고용보험을 들면 회사는 보험료 납부 등으로 증가하는 비용을 결국 우리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O씨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면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근로자가 된다면 향후 영업실적이 나빠졌을 때 보험사가 손쉽게 설계사를 내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고용보험 가입의 목적인 실업급여 수급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현행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는 구조조정이나 해고 등 비자발적 실업에 한정해 지급되고 있는데, 보험설계사는 이런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P씨는 “설계사 스스로가 실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개인사정으로 휴직할 수는 있어도, 보험사가 설계사를 일방 해촉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며 “보험료는 내는데 혜택을 못 받는다면 누굴 위한 정책인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고용보험보다 다른 4대보험을 통한 근로자성 인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K씨는 “자영업자인 터라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의 경우 지역가입자 신분으로 보험료 전액을 내고 있다”며 “일반 근로자와 달리 회사가 부담해주는 비율이 없어 2배로 힘들다”고 말했다.
고용보험과 별개로 단결권 등 노동3권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었다. P씨는 “설계사도 일을 하다 보면 부당한 현실이나 제도에 대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구심점을 만들기가 어려워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K씨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판매 수수료 체계나 근무조건을 두고 협상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개인이 나서긴 어렵고 노동조합을 만들 수도 없는 실정이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설계사들은 정부가 고용보험 의무화에만 그치지 말고 사각지대에 있는 다른 처우개선 문제도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했다. S씨는 “고용보험만 가입시키고 추가 대책이 없다면 ‘정부가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설계사를 근로자로 만들었다’고 보게 될 것”이라며 “정부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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