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필모그래피는 앞선 작품에서 이뤄 놓은 성과를 깨 나가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뜬금없다고 느껴질 만큼 작품간 연결점을 찾기 힘들죠. 하지만 배우로서 지향점은 늘 하나였습니다. 늘 새롭게 도전하는 것. 비록 그 도전이 주목받지 못할지라도 말이죠.”
배우 정우성(45)의 연기 인생 25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도전 정신”이다. 그는 “그동안 출연한 모든 작품이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순간, 결코 안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청춘 스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로, 그리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티스트로 자장을 넓혀 온 그의 행로와도 오롯하게 포개지는 이야기다.
22일까지 열리는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부천영화제)는 ‘정우성 특별전’을 마련해, 정우성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13일 경기 부천시 상동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우성은 “내가 특별전을 가질 만한 경력이 됐나, 그만큼 열심히 살았나 생각하게 된다”며 “아직 갈 길이 먼데 이렇게 큰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작품들로 이 시대 관객들과 다시 소통할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정우성의 대표작 12편이 상영된다. 정우성을 영원 불멸한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8)를 비롯해 ‘내 머릿속의 지우개’(200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아수라’(2016) ‘강철비’(2017) 등이 관객을 만난다. 상영작 선정은 부천영화제가 했다. 정우성은 “딱 12편만 골라서 추천할 수 없어서 영화제 측에 모든 걸 맡겼다”며 “각각 작품들마다 운명적 인연이 있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25년간의 ‘도전’을 후회하지 않기에 모든 영화가 다 소중하지만, 조금 더 특별하게 간직된 작품은 있다. 방황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 ‘비트’다. “‘비트’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죠.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을 선물해 줬으니까요. 10대에서 막 벗어난 20대 초반 나이에 10대 감성을 연기했어요. 주인공 민이 저에게 큰 위로를 줬고, 저 또한 저만의 방식으로 민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만난 김성수 감독님과는 아주 좋은 동료이자 친구가 됐어요. 40대가 돼서 ‘아수라’를 함께 작업했는데, 마치 ‘비트’를 다시 찍는 것 같은 열정을 느꼈습니다.”
정우성은 영화계를 넘어 사회에도 건전한 영향력을 끼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늘 말해 왔다. 민감한 문제에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예멘 난민들도 직접 만났다. 그는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틈틈이 세계 각지의 난민 캠프를 방문해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세월호 참사와도 연관돼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과 부채의식이 크게 발동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세월호 참사가 남긴 숙제죠. 침묵하지 말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지난 정권에서 우리는 침묵에 길들여졌어요. 정권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고,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무언의 압박이 가해졌으니까요. 그래서 자기 검열을 하면서 살았죠. 먹고 사는 데 충실한 게 본분이라는 식의 이상한 처세술을 교육받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누군가의 행동을 통해 서서히 깨뜨릴 수 있어요. 저 또한 그런 사람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바쁜 스케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영화진흥위원회 남북영화교류특위에 참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성급하게 다가가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남북이 함께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3차 남북정상회담 때 영화 교류 문제가 다뤄진다면 조금 더 순탄하게 교류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한국영화계가, 그리고 수많은 관객들이 정우성의 현재를 지지하고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스크린 안팎에서 그가 할 일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다. 정우성은 “지난 25년이 연기 인생 전반전이라면, 그 전반전에서 후반전의 비전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정우성 특별전이 얼마나 특별할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시간으로 정우성의 25년을 함께 나눠 줬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바람을 보탰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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