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공개하면서 북미 간의 후속대화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김 위원장도 친서에서 북미 협상이 “새로운 미래와 훌륭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한 달이 지나도록 양측이 비핵화 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두 정상이 발표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진정성까지 시험대에 올랐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7일까지 평양에 머물렀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편에 건네진 것으로 보인다. 정상 간 주고받은 친서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외교 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북미관계 개선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밝혔지만 비핵화 문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럼에도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북미 정상 간 신뢰만 부각시킨 친서를 공개한 것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이후 커지고 있는 대북 회의론을 돌파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미국 언론들이 연일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 ‘친서 카드’가 미국 조야의 비판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과거와 달리 정상 합의에 이어 실무 협의로 이어지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미군 전사자 유해송환 실무협의도 북한 측이 준비부족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함에 따라 15일로 연기됐을 뿐 무산된 것은 아니다. 북한이 실무협의 연기를 요청하면서 북한군과 유엔군사령부를 연결하는 판문점 직통전화를 다시 열어 정전협정 무효화 이후 5년 만에 북미 사이의 군사소통이 재개된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기대했던 수준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의 조바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만약 국제사회 앞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북미 정상을 향해 고강도 압박을 가한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체제보장 등 상응조치는 무시한 채 무조건 비핵화만 요구하고 북한이 공격적이고 거친 언사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위축시킨다면 협상의 동력을 살릴 수가 없다.
북미 양측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비핵화 협상의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으로 구축한 신뢰와 협상의 동력마저 사라질 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 거론했던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은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접근하고,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기지 폐기 약속 이행으로 비핵화 의지를 선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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